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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58

이제서야 이해되는... 그 시간.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다. 아버지와 크게 싸운 날이거나, 외갓집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거나, 꽤나 고약한 시어머니였던 나의 할머니가,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했을 때. 그럴 때면 엄마는 늘 하루종일 바빴다. 더럽지도 않은 데 청소를 또 하고, 그릇을 닦았다. 커튼을 뜯어 빨고, 이불을 빨았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엄마의 손길은 유독 거칠었고, 소리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청소기가 시끄럽게 윙윙대고, 세탁기가 웅 하고 돌아갔다. 장에 있는 온갖 그릇을 꺼내어 덜그덕거리며 내어 닦았고, 다시 덜그덕거리며 장에 정리해 넣었다. 정말 참지 못할 만큼 속이 상한 날에는, 그 그릇 중 한두어개가 깨어져 나가기도 했다. 어린 나는 그런 날이 무서웠다. 평소에도 엄한 성격이던 엄마가,..

눈 내리는 날. 아무것도 아닌 듯.

눈. 눈이 내린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고요하게. 그러나 소란스러움을 감싸듯이 넓게. 오랜만에 마음이 잦아드는 기분이다. 눈의 그 고요함이, 어느새 스르륵 옮겨오기라도 한 것 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늘상 있던 그곳인데, 늘 있던 그곳이 아니다. 눈을 밟는다. 천천히, 그러나 무게를 실어서 진득하게. 내 발자국이 남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사라진다. 아, 다행이랄까, 안심이랄까. 지워진다. 덮여간다. 아주 잔잔하게. 그런 흔적 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기억의 무게

한동안 마음이 몹시도 부대꼈다.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 질기고 끈끈한 무언가처럼, 그것은 내 숨을 탁탁 막아댔다. 소용돌이가 친다. 현재의 기억은, 과거를 줄줄이,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불러온다. 그리고는 마음을 한껏 휘저어 슬픔이 일렁이게 만들었다가, 머릿속을 돌고돌아 분노가 솟아오르게 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잖아." 하지만 나는 울부짖는다. "여전히 그 상처가 아픈 나에게는, 아직 현재야." 과거의 시간부터... 아물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계속 몇 번이고 상처가 나는 탓에, 내 상처는 점점 깊이 후벼파이고, 짓무르고, 더 넓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지금 살짝 할퀴고 간, 딱 그 만큼의 상처뿐인줄 안다. 그래서 내 눈물과 내 분노는... 그들에게는 우습도록 과하고,..

시간이 지나간 철길을 걷다..

슬픈 일이 있었다. 누구에게는 사소할 수도 있는, 그러나 나에게는 더없이 마음 아픈.. 그런 일. 괜찮지 싶다가도 순간순간 툭툭, 마음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는 곧 발작하듯 눈물이 쏟아졌다. 도저히 가만히 견딜 자신이 없어, 몇 가지만 간단하게 싸들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했지만 막상 가보지는 못했던... 그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느덧 나는 낯선 도시에 와 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서는 줄곧 걷고 또 걸었다. 이틀 동안, 무언가 목적의식도 없이 유명하다는 몇 곳을 찾아 다니는데, 차를 탈 생각도 없이 지도만 보고는 걸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도 지나치고, 평소에 좋아하던 유적들이나 전시도 눈으로 슬쩍 훝고 만다.오늘은 왠지 다 흥미가 없다. 피로하다. 그렇게 걷다..

왜냐고 묻기 시작하면...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이라는 영화를 참 좋아한다. 너무나 예쁜 맥 라이언과 젊은 날의 톰 행크스가 보여주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사랑은 마법이라고 외치는 그 달콤한 영화에서, 내 마음에 또렷이 남은 장면과 대사는 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장례식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의 아내이자, 어린 아들의 엄마, 사랑스러웠던 한 여자의 장례식. 검은 상복을 입고 아빠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아팠어. 그냥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졌지.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었어. 정당하진 않아. 이유도 없고. 하지만 왜냐고 묻기 시작하면, 우린 미쳐버리고 말 거야." "If we start asking why, we'll go crazy." 어쩔 수 없는 비극 앞에 선 한 사람의 무기력함과 ..

시시하고 소소하게.

왜 이렇게 정신이 없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눈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게 숨가쁘다. 그런데.. 분명 하루종일 바빴는데.. 막상 누워 잠에 들기 전이면, 왠지 모를 허탈한 마음도 든다. 하루하루 무던하게, 조금은 바보처럼 착실하게. 눈앞의 삶에 조급하고, 그러면서도 단조로운. 순간, 뭐 이런 시시한 인생이 있나 싶다. 나도 한때, 거창한 꿈을 안 꾼 건 아니었는데. 그저 막연하게지만,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 믿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러다가 곧, "그래 뭐, 어때. 이런 인생도 있지."하는데, 그 맘이 너무 태연해서 되려 놀랍다. 그러자, "그런대로 괜찮나?" 싶으면서, 왠지 안도감이 든다. 시시하지만 소박하게. 아주 가끔 소소하게 웃음이 나는... 뭐,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벚꽃, 봄날은 간다.

혼자 여행을 할 때, 나는 그 즈음에 마음에 든 노래 한 곡을 듣고 또 들으며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의 어느 골목길을 생각하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 저절로 흘러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고, 속초의 한적한 겨울 바다를 생각하면 "내일을 묻는다"가 함께 재생된다. 그렇게 한 곳의 장소, 한 때의 시간은, 한 곡의 음악과 함께 각인된다. 이번 봄, 벚꽃과 함께 걸은 음악은 "봄날은 간다". 봄꽃과 함께 듣는 그 음악은, 왠지 환하면서도 약간 슬프고, 그리우면서 가슴 뻐끈하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책, 에세이] 혼자일 것 행복할 것 - 혼자여도 행복하게, 오롯이!

[책, 도서, 에세이] 혼자일 것 행복할 것 루나파크 : 독립생활의 기록 / 홍인혜 지음 (루나)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은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이자 카툰 작가로도 활동하는 루나, 홍인혜의 에세이다.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선보인 그녀가 이번에 펴낸 책 '혼자일 것 행복할 것'은 30대의 그녀가 독립을 결심하고 혼자살아가는 날들을 기록하고 있다. 독립을 결심하고, 집을 구하고, 집에 여러 가지를 채워넣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시간들. 혼자여서 고독하고, 혼자여서 행복한 순간들이 이 책속에 그득 들어 있다. "그래 떠나자. 이 동네에서, 이 집에서, 이 지루한 기왕의 일상에서 벗어나자. 그래서 나는 독립의 꿈을 품었다. 이 권태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장을 바꿔야 했다. 낯선 곳으로 이주해 다시 ..

[만화책] 바라카몬 - 섬마을의 유쾌 상쾌한 일상!

[만화책추천] 바라카몬 / 사츠키 요시노 지음 (Satsuki Yoshino) 청정 섬마을에서 펼쳐지는 유쾌 상쾌한 일상!마음을 포근하게 보듬는 힐링 만화, 바라카몬 치유, 힐링, 일상, 청정, 유쾌, 쾌활, 맑음… 이런 수식어가 붙은 만화책이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이 만화책이 제일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로, 만화 바라카몬! ■ 바라카몬 : 주요 내용, 줄거리 ■ 도시에서 오로지 서예밖에 모른 채 성장해온 청년 '한다 세이슈'. 젊은 나이에 서예가로 이름을 날리던 어느 날, 그는 치기 어린 감정으로 뜻밖의 사고를 치게 된다. 그러자 유명 서예가인 아버지는 그를 일본의 가장 서쪽 끝 섬으로 보낸다. 서예가 '선생님'으로 불리지만, 서예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한다 세이슈가 섬마을에서 시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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