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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16

염소를 몰던 그녀는... (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 그리고 나)

전경린 작가의 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윤미소는 늘 집에서 부동산 정보를 찾아본다.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있는 집들을. 사지도 않을 거면서 늘 그렇게 어느 곳에 있다는 집을 알아보고, 어느 날은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한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그때의 나는 20살 초반쯤 되었고, 사실 윤미소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그렇게 다른 곳의 집들을 찾아 보기만 하는 그녀가, 조금은 답답하고, 아둔하다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살 무렵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을테니.. 그러나 10여년쯤 지나고, 나이가 먹고… 어느 새 문득, 나는 내가 윤미소가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요즘의 나는, 그녀처럼 종..

시시하고 소소하게.

왜 이렇게 정신이 없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눈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게 숨가쁘다. 그런데.. 분명 하루종일 바빴는데.. 막상 누워 잠에 들기 전이면, 왠지 모를 허탈한 마음도 든다. 하루하루 무던하게, 조금은 바보처럼 착실하게. 눈앞의 삶에 조급하고, 그러면서도 단조로운. 순간, 뭐 이런 시시한 인생이 있나 싶다. 나도 한때, 거창한 꿈을 안 꾼 건 아니었는데. 그저 막연하게지만,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 될 거라 믿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러다가 곧, "그래 뭐, 어때. 이런 인생도 있지."하는데, 그 맘이 너무 태연해서 되려 놀랍다. 그러자, "그런대로 괜찮나?" 싶으면서, 왠지 안도감이 든다. 시시하지만 소박하게. 아주 가끔 소소하게 웃음이 나는... 뭐,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오후의 산책이 만든 산딸기잼

집 근처의 산을 산책 하는 길에 산딸기가 주렁주렁 열린 곳을 발견했다. 점심 먹고 어슬렁어슬렁 나왔다가 다시 후다닥 집으로 돌아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온다. 긴 바지에 긴팔 티, 장갑과 산딸기를 담을 봉지, 나무 막대기 하나.풀숲에 나오는 각종 벌레와 혹시 있을지 모를 뱀, 그리고 산딸기의 숱한 가시로부터 조금 안전해지기 위해서다. 그렇게 산딸기를 한참이나 따서 봉지에 담았다. 집에 가져와서 조심스럽게 산딸기를 씻어 본다.자연에서 자란 산딸기는 알이 탱탱하고 싱싱하다.선명한 산딸기 붉은 색이 태양빛을 머금었나 싶다. 씻은 그 자리에서 굵은 것으로 골라 입으로 쏙쏙 넣어본다. 새콤하고, 달콤하다. 설탕을 넣고, 레몬즙을 넣고, 산딸기 잼을 만들기로 한다. 타지 않게 계속 저어주고, 우르르 끓어올라 튀지 ..

삶이 웃음을 머금는 순간들

삶이 웃음을 머금는짧은 순간들 이름모를 들꽃 한 송이를 마주했을 때 나뭇가지 틈새로 햇빛이 비춰올 때 다람쥐가 튀어나와 인사할 것만 같은 나무 구멍을 발견했을 때 남의 집 담벼락에 장미꽃이 소담스레 피었을 때 나뭇잎 사이사이 빨간 열매가 빵긋 얼굴을 내밀 때. 무료하던 일상이 갑자기 알록달록 변하는,소소하지만 즐거운 순간순간들.

[일상] 늘 푸른 소나무, 그러나 머무르지 않는…

소나무. 사시사철 푸른색을 잃지 않는 나무. 겨우내 푸르러서 봄이 온다는 생경함마저 느끼지 않는 존재. 그러나 문득 올려다 본 나무는, 늘 보아온 익숙함 대신 새로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봄이 되어 훌쩍 자란 잎 가지의 끝에서는, 그 동안의 묵은 잎과는 분명 다른 색을 발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살아온 긴 세월에만 기대지 않고, 사시사철 푸른 그 익숙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 봄에 소나무는 더 자랐고, 새 잎을 피웠고, 그리하여 머지 않아 다시 단단한 초록이 될, 맑은 연둣빛을 품게 되었다. 나무가 묻는 것 같다.너는 지금, 자라고 있느냐고. 그간의 세월을 차곡차곡 잘 쌓으며, 그 끝에 여전히 자라는 새 잎을 덧붙이며 살고 있느냐고.

12월, 겨울 바다에 서다

겨울의 바닷가. 겨울의 태양은 맑고, 바람은 청아하다. 그 날 한 가운데, 드넓은 바다를 혼자서 차지하는 호사를 누려본다. 누군가와 함께였으면 하고 바랐다가, 이내 혼자인 이 시간이 되려 즐거워진다. 빈 것은 아니다. 파도 소리가, 갈매기가, 그리고 시리도록 청량한 바람이 바닷가를 채운다. 그리고, 백사장엔 바람의 발자국만이 잔뜩 새겨져 있다. - 사진 : 물치 해변 (강원도 양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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