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속의 망상/TV 보기

이범수는 아깝고, 윤아는 안타깝다 [총리와 나]

스위벨 2013. 12. 31. 19:12
반응형

[드라마] 총리와 나

: 이범수는 아깝고, 윤아는 안타깝다

 

연말 각종 시상식으로, 어제는 월화 드라마 중에 <총리와 나>만이 정규 방송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재방송으로 보던 드라마를, 어제 처음으로 본방사수하며 보았다. 그리고 TV화면을 들여다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저 드라마는 뭐가 문제일까?

 

총리와 나의 처음 시작은 기세 등등했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이범수란 배우에 대한 기대감, 거기에 아이돌 중에 연기 좀 한다는 '윤아'의 등장, '총리'라는 색다른 소재의 사용에 대해서.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연 드라마는 한 순간에 김이 피시식 빠져나갔고, 급기야 배우들에게 결코 반갑지 않은 시청률을 쥐어주고 말았다.

 

 

한 켠에서는 윤아의 연기력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연기력으로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한 여배우의 연기력 논란만으로 드라마의 흥망성쇠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례로 이연희의 발연기 논란을 지핀 드라마 <유령>은 꽤나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다. 또한 김태희도 나올 때마다 연기력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지만, 그녀의 드라마 중에 시청률 참패를 기록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때문에 드라마 실패의 오명을 윤아에게 모두 다 덮어 씌우기엔, 그녀가 상당히 억울할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야?

 

 

데자뷰인가, 익숙함인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모든 컨텐츠 창작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이자, 가끔은 그들에게 허락된 작은 숨구멍이자, 때론 머쓱한 변명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새로울 거 없다지만, 이리 익숙해도 되는 걸까?

계약결혼, 정치판, 처음엔 원수였던 남녀 주인공, 상처를 가진 남자 권율과 캔디 캐릭터 여주인공 남다정,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며 정을 쌓아가고,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는 악의 편에 서고…. 익숙한 한 두 가지 설정에 다른 내용을 첨가한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서 차용한 여러 흔하디 흔한 설정들이 모두 다 뒤섞여 있다. 드라마는 예전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계약결혼은 하도 많이 나왔던 터라 다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엄마 없는 아이들과 부딪히며 그 속에서 정이 든다 하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가장 최근에 했던 작품을 꼽자면 '수상한 가정부'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 신선한 듯 보였던 '최연소 총리'라는 설정도 막상 보니 새로울 건 없었다. 이미 대통령의 연애사도, 국회의원의 사랑도,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러는가?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어제 최악의 장면을 꼽자면, 나는 남다정 역의 윤아가 총리의 큰 아들을 쫓아가며 '나는 왜 이러는 거지'했던 장면을 꼽겠다. 대개 여주인공이 사랑을 깨닫는 장면이라면, 조금은 감동적이거나 무릎을 치거나, '드디어!'하며 반가운 마음이 들거나 해야 할 텐데, 어제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벙했다.

 

 

윤아는 내내 총리에게 구박을 당했다. 물론 같이 생활하는 동안 정도 쌓였다. 총리 쪽에서도 윤아를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 그러나 윤아는 오히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윤아는 아이들도, 총리님도 좋아했다. 그런데 사랑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랑을 먼저 깨닫는 건 총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 윤아는 혼자서 아들래미를 뒤쫓으며, "아, 나는 왜 이러는 거지?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각성했다. 대개 깨달음은 얻는 건 순간이지만, 그렇다고 뜬금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물의 감정선은, 시청자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다.

 

 

인위적인, 혹은 작위적인

 

위의 장면과 더불어, 실소를 머금었던 또 다른 장면이라면 '나의 세헤라자데여!'라고 읊조린 그 장면을 꼽겠다. 너무나 다분히 의도적이어서 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장면이었다. 독자에게 무언가 감정의 움직임을 주고 싶었던 장면 같지만, 이리 대놓고, "이 남자가 이 여자를 사랑할 거야, 어때, 감동이지?" 하고 얼굴 들이밀 줄은 몰랐다.

 

 

너는 여기서 감동 받아, 여기서는 여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져야 해, 여기는 잠시 울어도 될 타이밍이야, 하고 지시를 내리는 듯한 느낌이다. 시청자의 감정이 자유롭게 흘러가 미처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제작진의 그 의도가 먼저 와 닿는다. 어제 권율 역의 이범수가 남다정을 교통사고로부터 구해 줄 때도, '어머나!'하기 보다는 '뭐야?'가 먼저 나왔다.

 

이 드라마는 대부분 그렇다. 의도가 너무 빤히 보여서, 차마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실소가 먼저 온다. 윤아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고, 상처를 간직한 총리님은 나쁜 남자 코스프레 중이다. 그런 전형적인 캐릭터에, 상황마저 이리 틀에 박히고 인위적이니, 도무지 몰입이 되지 않는다.

 

◇◆◇

 

지나친 혹평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이리 몰입 안 되는 드라마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귀여운 만세를 보는 게, 이 드라마를 시청하며 얻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래서 총리님 이범수의 뛰어난 연기력은 아깝고, 윤아의 고군분투는 안타깝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