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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나쁜 놈들 전성시대 [왕가네 식구들]

스위벨 2013. 12. 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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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 가히, 나쁜 놈들 전성시대

 

 

드라마 별로 한 두 명의 특이하거나 개념 없는 캐릭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실제로 다양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고, 드라마 속 세상도 인생의 한 단편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이렇게 어느 한 구석이 이상한 인물군들이 한 드라마에 총집합 할 줄이야.

 

남편 사업 망했는데 외제 유모차를 사고, 미스코리아 나온 여자 운운하며, 자기 자식은 친정 엄마에게 아예 맡겼다. 그런 딸을 그저 받아주기만 하는 친정 엄마도 가히 상식적은 아니다. 그 엄마의 이상한 딸 차별도 마찬가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아예 그 여자와 살겠다고 나간다는데, 케이크에 촛불 켜 송별회를 해주는 호박이도 있다. 배신당한 며느리와 버려진 손자들은 상관 없이, 아들이 만나는 돈 많은 상간녀가 좋은 허세달의 어머니도 있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그려지던 상남이 아버지는 며느리 오디션을 여는 시아버지로 그려지더니, 급기야 치졸한 시어머니 저리 가라 하는 꼴불견 시아버지로 변신했다. 아이 버리고 나갔던 상남이 엄마는, 껌 쫙쫙 씹으며 들어와 집안에 불란을 일으킨다. 자기 때문에 불행한 결혼을 해야 했던 동생에게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예전 애인 운운하며 안부를 묻는다.

 

비교적 정상적이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억울하다. 비상식적이고 개념 없고, 막무가내인 사람들에게 언제나 당하고 산다. 단지 드라마, 라고 치부하기엔 상황이 불편하다. 착한 사람은 한 없이 당하고, 조금 무식하고 비정상적으로 살아야 자기 몫 챙기고 산다는 그 메시지가 말이다.

 

 

물론 이 드라마의 끝은 뻔하다. 권선징악. 죄 지은 그들은 벌을 받고, 뉘우치고, 착한 그들에게 용서를 빌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착한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건 없다. 착한 그들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나쁜 그들이 어딘가 더 나쁜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고, 착한 그들에게 잘못했음을 깨닫는 결말이다. 그런 결말이 불편하고, 상당히 아니꼽다.

 

만약 허세달의 상간녀가 허세달을 버리지 않고 결혼했다면, 왕호박은 그저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신통이 방통이도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상태로 컸을 것이다. 그리고 왕수박은 현재의 불륜남에게 버림받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매몰차게 배신해줄 불륜남이 아니면, 왕수박은 쭉 그렇게 안하무인일 것이다.

 

 

참고 견디기만 하는 착한 사람들의 '선의'가 한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들을 능가하는 기막힌 '악의'에 당하고서야 그들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다.

이러한 상황은 권선징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저 악한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쁜 놈들 전성시대다. 악한 그들을 반성하게 해 주는 건 더 큰 악함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그저 불륜도, 결혼도, 부모자식간의 정도 모두 다 장난처럼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상관 없다. 인물들의 개념은 저 멀리 보내두었다가, 마지막회 쯤 되어서야 불러들여, 다시 탑재해 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한 순간에 싹,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던 세상은 갑자기 화해와 용서로 행복해 질 것이다. 더 없이 훈훈하고, 더 없이 씁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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