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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공주, ‘에쿠니 가오리’를 꿈꾸나?

스위벨 2013. 12. 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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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로라 공주, '에쿠니 가오리'를 꿈꾸나?

 

 

많은 시청자들을 기함하게 했다. 전남편과 현남편이 함께하는 기묘한 동거라니. 하지만 작가는 그 황당한 상황에 대한 비판조차 자기 인기에 따른 관심이라 받아들이는 최강 정신세계를 가진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착각과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명백히 비난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이러한 구도는 종종 있었다. 꽤나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보자면, 유명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와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작품을 찾아보자면,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있다. 유명 출판사의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글루미 선데이>에서는, 한 여성을 사이에 둔 두 남성과의 관계가 그려졌고,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동성애자 남편과, 그의 남성 애인, 그리고 공식적 부인이 한 집에 함께 생활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다소 범상치 않은 사랑관을 가진 여자가, 버젓이 남편이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다시 한번 결혼해 아이까지 갖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후에 손예진, 김주혁 주연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꽤나 호평을 받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왜 임성한 작가만, 그의 <오로라 공주>만, 이렇게 많은 비난과 비웃음을 한몸에 받는 걸까?

 

 

문제는 바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

 

 <글루미선데이>의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한다. 이것은 <아내가 결혼했다>도 마찬가지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아내도 남편이 동성애자임을 알지만, 너무나 사랑한다.

중간에 놓인 한 사람도 두 사람의 어느 부분을 좋아한다. 어느 한 사람만을 내 사랑,으로 선택한 상태가 아니란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남편도, 동성의 애인을 두고 있으면서도, 아내를 굉장히 사랑스럽게 여긴다.

중간에 있는 한 사람은 둘 중 어느 선택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양 옆에 선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가지고 싶어하고, 결국은 그를 공유하는 방법으로라도 곁에 머무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과정은 그냥 하루 아침에 뚝딱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둔 그들의 관계가 자리를 잡기까지, 인물들은 무수한 고뇌를 거듭했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처절하게 애썼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이 여전히 힘들더라도, 그래도 그의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위의 작품들은 작품 내에서 그런 인물들의 고뇌와 번민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이해' 시켰다. 그것은 곧 '설득'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작가들은 '설득'에 성공했다. 그 생각에 오롯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는 만들어 둔 것이다.

 

 

 

하. 지. 만. 오로라 공주는 어땠나? 오로라가 설설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다 갑자기 황마마를 사랑으로 선택할 때도, 작가는 '시청자'들의 이해 따위 구하지 않았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공감하지 않았다. 다시 오로라가 설설희의 병을 알고 사랑하니 마니 할 때도,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 마음 넓게 먹고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이번에는 어땠는가? 이혼한 전남편은, 갑자기 이혼한 전부인의 현남편(말하기도 복잡하다)의 간병인을 하겠다고, 한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겠단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 부인이 낯선 간병인과 함께 있는 것만큼이나, 임신까지 했던 전남편과 함께 두는 게 더 싫다고 할 것이다. 그러기에 설희의 제안은 기막히기만 하다.

당황스럽기는 황마마도 마찬가지다. 설희의 제안에 고민도 없고, 부부가 된 설희와 로라를 보며 갈등도 없다. 아직 감정정리도 되지 않았을, 사랑하는 내 전부인과 그의 남편을 함께 두고 보며 아무런 심적 동요도 없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와서는 아주 쿨하게, 로라, 설설희와 다정한 가족을 형성했다. 여전히 내 사랑이라고 울면서 로라를 붙들던 황마마는, 그렇게 순식간에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오로라 공주>는 도무지 상식적이지도,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도 없는 기이한 상황을, 최소한의 책임감도, 성의도 없이 막무가내로 풀어 놓으며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설득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그냥 막무가내로 들이민다. 예로 든 작품들이 힘들게 거쳤던 그 과정들의 몸통은 모조리 잘라먹고, 꼬리만을 그냥 툭 던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조금의 갈등도 없이 받아들인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이제는 되려 시청자가 갈등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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