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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이, 그 마지막 약속의 무게 [응답하라 1994] 15화,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Ⅱ

스위벨 2013. 12. 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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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15화,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Ⅱ

: 나를 변화시킨 사람들, 나를 변화시킨 사랑들 – 칠봉이, 그 마지막 약속의 무게

 

 

서태지가 윤진이를 변화시키듯, 윤진이가 성균이를, 오빠가 나를, 내가 오빠를, 그렇게 바꿔가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생각지도 못할 일들을 우린 해내고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순전히 사랑이다.

 

역시,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나정이는 점점 여성스러워진다. 머리를 만지고,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린다. 그리고 조금씩 더 쓰레기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쓰레기는 그런 나정이가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나정이가 점점 더 가까이로 다가올 때마다 본의 아니게 나정이를 밀어낸다. 그 이유는 바로 '부모님' 때문이다.

 

나정의 엄마는 쓰레기를 '우리 아들' 이라 부른다. 쓰레기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이 기쁜, 아들이 잘 먹는 게 마냥 좋은, 진짜 엄마다. 나정이의 아빠는 또 어떤가. 매일 금수라고 구박하면서도, 시험으로 힘들었을 쓰레기를 위해 곰탕을 끓여주라 말한 것도 아빠였다. 나정이 부모님에게 쓰레기는, 떠난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또 다른 아들이었다.

 

 

그런 부모님들을 알기에, 쓰레기는 나정이와의 연애가 어딘가 한구석 불편한 것이다. 부모님 몰래 하는 연애가, 꼭 부모님을 속이는 것만 같다. 나정이가 뽀뽀해 달랄 때마다 혹시 부모님이 눈치채지 않으려나 싶은 마음에 밀어내기 먼저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나정이와의 당당한 연애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정이를 위해서.

 

"정아, 내일 오빠 저녁 먹으러 올게. 옷 예쁘게 입고 있어라. 정식으로 말씀 드릴라고. 우리 사귄다고. 아버지 어머니한테 정식으로 말씀 드려야지. 말씀 드리고 맘 편하게 만나자."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던 엄마는 말한다.

"사랑 아이가 사랑. 저거 사랑 없으면 못한다."

 

여자 친구을 향해 '도둑년'이란 말을 서슴없이 뱉어내던 삼천포가, 윤진이를 위해서는 '변기 도둑'으로 거듭났다. 나정이는 쓰레기를 사랑할 수록 점점 용감해지고, 여성스러워졌다. 그리고 쓰레기는 나정이를 위해 양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또한 지난 회에서, 빙그레는 가족을 위해 의대에 복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금씩 자신을 바꾸어 가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일부가 변해도 좋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에서, 칠봉이도 변했다. 칠봉이는 나정이의 사랑을 줄곧 지켜보았다. 사랑이 이루어진 지금, 나정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 지금은 그런 나정이의 행복을 그대로 두는 게 그녀를 위한 일이다. 더 이상 자신의 사랑만을 억지로 고집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으로 비춰질 것이다. 사랑과 집착은 그리 멀리 놓여있지 않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정이 주위를 맴돌며 자신을 봐달라 애쓰던 칠봉이는, 나정이에게서 한걸음 멀리 떨어졌다. 출국 전 마지막 날, 감독님의 배려로 시간을  가지게 된 칠봉이. 당연히 나정이에게로 뛰어 갈 것 같던 그는 나정이를 찾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에 도착해서 전화를 통해 하숙집 식구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나정이를 바꿔주겠단 말에 황급히 훈련 핑계를 대고 끊는다. 다른 때 같으면 제일 먼저 나정이를 찾았을 그가 나정이와 닿을 기회를 먼저 거절했다.  

 

 

칠봉이는 나정이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그건 나정이를 잡은 한 가닥 끈을 놓아버린 건 아니었다. 칠봉이는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시간이 난 칠봉이는 나정이에게로 뛰어가지 않았다. 대신 쓰레기를 불러낸다. 그리고 그에게 낡은 야구공 하나를 건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처음 선발로 나갔어요. 항상 정신 없고 산만하던 7번 타자. 당연히 한 가운데로 직구 잡고 던졌어요. 그런데 그대로 받아 쳐서 홈런. 제가 처음으로 진 경기예요. … 1년 뒤 똑 같은 팀 똑같은 선수에게 3진 잡고 이겼어요. 1년 전에 졌던, 이 공으로. 이 공, 선배님한테 맡길게요.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찾으러 올게요."

 

칠봉이의 그 말은 곧 선전포고였다. 9회말 2아웃, 다 이긴 경기를 방심하다 져버린 칠봉이는, 그 실패를 딛고 1년 후에는 똑 같은 공으로 그 상대를 이겨냈다. 그 공을 쓰레기에게 건넨 건, 지금은 자기가 지고 가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칠봉이의 다짐이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  

 

그렇게 나정이의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칠봉이는 눈밭에서 나정이의 손을 꼭 잡고 건넨 인사를 자신의 마지막 모습으로 만들었다. 나정이는 떠나간 칠봉이를 생각할 때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를 것이고, 그의 약속이 떠오를 것이다.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이란건, 늘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몇 년 후'를 기약한 그의 약속이 더 많은 무게를 가지게 되었다. (설사 훗날, 칠봉이가 그 공의 주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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