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상의 조각들

라일락이 건네는 보랏빛 봄 인사

스위벨 2014. 4. 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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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 학명 : Syringa vulgaris

- 다른 이름 : 양정향나무, 큰꽃정향나무,

 

 

마당 한 켠에 심어진 라일락 나무에서 꽃이 피어났다. 마당에 들어서면 꽃의 생김새보다는 향기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은은하고 달큰한 보랏빛 내음.

 

봄이 찾아왔음을 느끼게 하는 건 여러 가지지만, 나의 경우에 본격적인 봄을 느끼게 되는 건, 향기로운 내음이 시작될 즈음이다. 우리 집 마당 한 켠에 심어진 라일락 나무 한 그루. 봄이면 개나리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경쟁하듯 피어난다.

봄을 제외한 3계절 동안 나는 거의 이 아이의 존재를 잊고 사는데, 그래도 라일락은 매년 봄이면 찾아와 어김없이 황홀한 인사를 건네준다.

 

 

은은한 보라색 꽃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도 예쁘지만, 내가 라일락을 가장 아름답게 인식하는 수단은 바로 향기다. 그러나 꽃이 피어났다 지는 시간은, 가뜩이나 짧은 봄을 더 짧게 느껴지도록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매년 더 기쁜 마음으로 그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싶은 걸 게다.

 

 

라일락 나무 아래 서 있으면 여러 기억이 지나간다. 내가 좋아하던 만화책에 라일락이 등장하던 장면, 학교에 한 가지 조그맣게 꺾어가 친구들과 향기를 맡아보며 수다를 떨던 추억, 가수 장재인의 목소리, 아빠가 내방 책상 위에 고이 꽂아두신 라일락 가지, 지금은 과거가 된 사람들의 얼굴…

 

 

 

이제 곧 라일락이 질 시간이다. 보랏빛 꽃들은 점점 사라지고, 초록의 이파리들이 무성하게 피어 오를 것이다. 하지만 라일락은 언제나 내게 봄을 약속한다. 그리고 항상 그 약속을 지킨다.

 

꽃이 지고 나면 나는 내년 봄이 올 때까지 또 잊고 지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런 날 타박하지 않고, 또 흐드러지게 피어나 인사를 하겠지.

"이봐, 나 또 왔어! 어서 일어나. 벌써 봄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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