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스위벨 2014. 1. 3.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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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악의 –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그가 만든 탐정 캐릭터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또 하나의 추리 소설이다.

 

유명 작가인 '히다카'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현장을 처음 발견한 건 히다카와 한달 전 재혼한 젊은 아내와, 그의 오랜 친구인 '노노구치'다. 아동문학 작가이기도 한 '노노구치'는 '히다카'와 만날 약속을 하고 그의 집을 찾았으나, 집 안에 모든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호텔에 머무는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히다카와 아내는 며칠 내로 일본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짐을 모두 옮기고 부인과 호텔에서 묵고 있었다. 다만 작가인 그는 그날까지 출판사에 넘길 원고가 있었기에, 잠시 그 집에 머무르며 남은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히다카'의 살해범을 잡기 위한 조사가 시작되고, 몇 명의 용의자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가가형사'는 현장의 최초 발견자이자 피해자의 오랜 친구라는 '노노구치'에게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 노노구치는 가가형사와도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가가 형사는 결정적 증거를 잡아 그를 추궁하고, 그는 자신이 범인임을 자백하고 체포된다. 그러나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문다. 가가 형사는 그가 숨기려 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야만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깊디 깊은 악의가 잠재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 악의가 이길 때,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겠지요."

 

 

범인은 책의 반절을 채 넘어가기도 전에 잡히고 만다. 또한 범인은 그가 분명하다. 추리소설에서는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때문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누구'가 아닌 '왜'를 찾아가는 여정이 된다. 범인을 찾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숨은 의도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노노구치는 히다카를 죽인 걸까? 가가형사는 끈질기게 그 이유를 찾아 헤맨다.

 

이야기는 '글'이라는 매체를 이용해서 진행된다. 이 소설 속에는 두 사람이 쓴 글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책 안에서도 누군가가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가 쓴 '글'로 표현되는 것이다. 첫 번째 글은 아동문학 작가인 '노노구치'가 사건에 대해 쓰는 수기이고, 두 번째 글은 '가가 형사'가 사건을 조사하며 쓰는 기록이다. 그 두 시점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용의자인 노노구치가 쓴 '수기'를 통해 진행된다는 건, 이 소설이 가진 특징이자, 또 다른 이야기의 커다란 한 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나의 글이 인간의 사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인간의 판단력과 시각이란 얼마나 편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가형사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도 함정에 빠지고 만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악의'란 제목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속에는 학창 시절의 '학교폭력'이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책이 보는 시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향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이다.

그리고 책에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애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타인에게 행하는 지독한 폭력으로 얼룩진 악의의 이유가, 단지 '그냥'이라는 것이다. 단지 학교폭력에서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서 문득 자라난 비뚤어진 한 부분은, 그렇게 지독한 악의를 남기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악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악의'란 것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것들인데, 뭔가 쿵 하고 덮쳐와 그것이 가진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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