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속의 망상/TV 보기

김지수, 그녀의 독기가 슬프다 [따뜻한 말 한마디]

스위벨 2013. 12. 18. 00:01
반응형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김지수, 그녀의 독기가 슬프다

 

 

자신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인 여자, '은진(한혜진)'의 주변에 머물기 위해, 꾸역꾸역 같은 쿠킹 클래스에 나가던 미경(김지수)이었다. 낯에 누구를 만났는지 알면서도 밤에 돌아온 남편에게 아무런 내색 안하고 충실한 아내 역할을 했다. 꼬이다 못해 꽈배기가 될 지경인 시어머니 성질을 그대로 받으면서도, 착한 며느리였다.

 

그런 그녀가 터졌다. 그러나 남편 앞에서, 시어머니 앞에서가 아니라, 쿠킹 클래스 사람들 앞에서였다. 그리고 은진 앞에서였다. 은진에 대한 악의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잘 절제해 오던 그녀였다. 하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결국 은진에게 이런 말을 뱉었다.

 

"바람 핀 남편하고 사는 기분이 어때? 얼마나 자신 없고 초라하고 못났음… 나 같으면 벌써 집어치웠어. 아무리 사랑해도 그딴 놈하곤 안 살아."

 

자기 남편과 바람 피운 은진에게 날카롭게 쏘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정작 은진에게 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바람 난 남편에게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제대로 사과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동생이 벌인 일을 덮어주려는 과정에서, 피해자인 자신이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바람 핀 남편'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얼마나 자신 없고 초라하고 못났으면 그러느냐'는 그녀의 독설은, 그대로 그녀에게 돌아와 박힌다. 은진에게 심장이 욱신거리는 정도의 통증이라면, 미경 자신에게는 심장을 찌른 상처였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집으로 돌아와 한 소리 했다. 술도 취했겠다, 남편도 마주쳤겠다. 그런데 시집 와서 평생을 헌신하고 살았음에도, 누구 하나 자기 편이 없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도, 오히려 뒷조사를 한 아내에게 큰소리 친다. 시어머니는 그녀가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번 했다고 출신까지 왈가왈부 해가며, 네가 시집와서 한 일이 뭐 있냐고 며느리 잡도리다.

 

 

자신은 평생을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려 애썼는데, 그들은 자신을 한번 받아주지 않는다. 속상하냐, 미안하다 해주면 그걸로 꾹꾹 누르며 살수도 있는데, 그들의 태도가 그녀를 더 독기 어리게 만든다.

 

 

"형님, 누나가 뭐랬든, 취해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 좀 받아주면 안됐습니까?"

 

결국 집에 돌아온 미경의 동생 민수(박서준)가 매형 재학(지진희)을 향해 한마디 한다. 그리고 그는 누나를 번쩍 안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사돈 어르신의 악의 어린 독설을 똑똑히 들으면서. 결국 그녀가 평생을 바쳐 꾸려온 그 집에서, 상처 입은 그녀를 안아 줄 사람은 미경의 동생뿐이다.

 

그는 이미 매형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나 미경이 그랬듯 말이다. 다만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이유는 미경과 같다. 단 한 가지다. 돌아와 주길 바라니까. 다시 돌아와 가정을 지켜주길 바라니까. 하지만 미경의 바람도, 민수의 바람도 그들은 모두 다 밟아버렸다. 모르는 척 꾹꾹 누르며 참았던 그들의 마지막 노력까지도.

 

 

나는 은진(한혜진)을 이해한다. 그녀가 받았을 배신감을, 남편의 외도를 맞닥뜨린 그녀의 공허함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명백히 잘못했다. 자신의 상처를 죄 없는 다른 여자에게 그대로 갚는 것으로 치유해서는 안 됐다.

 

 

미경(김지수)의 독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상처받는 것은, 남편도 시어머니도, 불륜녀 은진도 아니다. 바로 '미경' 자신이 될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니 하는 억울함과 분노, 그럼에도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못난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악의와 독기만 남은 내 모습에 대한 경멸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 독기가 정녕 슬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