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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응답하라1994, 17화- 사랑, 두려움Ⅱ]

스위벨 2013. 12. 1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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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17화 - 사랑, 두려움 Ⅱ

: 사랑,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잃고 싶은 게 없다면 두려움도 없다. 사랑이 깊어갈수록, 잃고 싶지 않을수록 두려움이 커져만 간다. 사랑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하지만 사랑으로 인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다시 사랑이다.

 

나정이와 쓰레기는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장거리 연애를 이어간다. 나정이의 생일 날, 쓰레기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나정이는 부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날마저도 쓰레기는 병원 호출로 바쁘고, 결국 나정이의 생일 케이크에 불도 켜지 못한 채로 다시 병원으로 뛰어간다. 하지만 금방 다시 오겠다던 쓰레기는 병원 일이 이어져 밤이 늦어도 집에 가지 못하고, 결국은 아침이 밝아서야 뛰어간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깨끗이 치워져 있고, 불을 켜지 못한 케이크만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쓰레기는 즉시 나정이의 삐삐에 호출하지만, 나정이는 답이 없다.

 

 

나정이가 그렇게 가고, 멍해진 쓰레기는 결국 어머니가 건강검진하러 병원에 오기로 한 것도 깜박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당장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모시러 가야 하는데, 병원 일이 또 가로막는다. 그때 여자 동기인 민정이가 쓰레기 대신 터미널에 가주겠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심히 걱정했다.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당연히 쓰레기가 Yes라 답하고, 그 행동은 나정이의 오해를 불러올 게 뻔하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역시, 다른 드라마가 쉽게 가져다 쓰는 그 방법을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모두의 추측을 물리치고, 쓰레기는 이리 말한다.

"니가 왜? 니가 왜 거길 가는데?"

그러더니, 남자 동기에게 환자 드레싱을 대신 부탁하고, 뛰기 시작한다. (아, 차가운 마산 남자. 그러나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하겠지.)

 

그러고 병원 문을 막 지나치는데, 나정이가 떡 하니 어머니를 모시고 택시에서 내린다. "내 목욕 갔다 왔는데?" 예상과 달리 여전히 밝고 쾌활한 나정이를 보고, 쓰레기 얼굴이 환하게 바뀐다. 그리고 쓰레기는 나정이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정아, 오빠 다음에 또 이랄 수도 있다. 오빠가 아무리 노력해도 니 또 이렇게 힘들게 할 수 있다."

"으응. 안다. 나 진짜 괘안타."

"오빠가 안 괜찮다. 그래서 말인데… 정아… 우리 정이, 오빠한테 시집 올래? 오빠랑, 결혼해 주세요. 오빠가 억수로 잘해줄게, 라는 말 못 하는데… 같이 살면, 지금처럼 오빠 불안하진 않을 거 같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나정이에게 반지를 내민다. 사실, 작년 생일에도 나정이는 반지를 원했었다. 하지만 쓰레기는 척추에 좋다는 꺼꾸리를 용감하게 들이밀어 나정이의 마음에 막대한 충격을 안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정이가 그토록 원하던 반지였다. (비록 반지 구매 과정에는 성시원양의 막대한 기여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둘의 관계에서, 언제나 보채고 두려워하는 건 나정이 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멀리 떨어진 쓰레기는 나정이가 궁금하고, 그녀가 하루라도 전화를 안 하면 불안해 한다. 혹시 그녀의 마음이 식을까, 그녀 곁에 다른 남자가 나타날까 봐 두렵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공간상의 문제도 한몫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진 나정이에 대한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차츰 그녀를 더 사랑하면 할수록, 쓰레기의 마음에는 두려움도 같이 자랐다. 그래서 결국 사랑이란 이름은, 그리고 그 옆에 같이 붙은 두려움이란 이름은, 그 눈치 없고 멋대가리 없는 남자로 하여금 무릎 꿇고 반지를 내밀게 만들었다.

 

 

사랑 곁에 붙은 두려움은, 얼핏 위험한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사랑을 위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더 굳건히 이어가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없다면 상대에게 언제까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상대를 더 배려하고, 한번이라도 챙기게 만드는 건, 사랑이란 이름과, 그 이름 곁에 두려움이란 단어가 붙어서 함께 다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마구 투정부리고, 얄밉게 말하고, 문을 퍽퍽 닫고 시위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아무리 밉게 굴어도 엄마는 나를 떠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랑에는 두려움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크다는 건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빙그레의 나레이션 대로, 사랑하는 자가 느끼는 그 두려움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게 노력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만든 노력을 먹고, 사랑은 더욱 크게 자랄 것이다. 사랑은 잔인하지만, 그 위험을 무릅쓸 만큼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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