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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마마의 죽음으로 해결한 무책임한 결말 [오로라공주]

스위벨 2013. 12. 1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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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로라 공주] 황마마의 죽음으로 해결한 무책임한 결말

 

결국은 '황마마', 그가 죽어야 해결될 일이었다. 드라마 도중, 오로라는 둘째 누나 황미몽을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황미몽은 오로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으나,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우리의 똑순이, 오로라의 논점은 이랬다.

 

황마마는 이제 자기에게 전남편 아니고, 은인이다. 남편 살려준 은인이다. 설설희에게도 형이자 목숨 살려준 은인이다. 황마마가 가진 애정 결핍이 크다. 그걸 자신들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은인'이란 부분은 인정한다. 과정의 타당성이야 어찌 되었든, 일단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의 간병을 통해 설설희가 건강을 되찾았으니, 은인은 맞다. 오로라가 더 이상 사랑했던 전남편으로 그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 살려준 은인이라 하니, 그것도 받아 들일 수도 있다. 그런 감정의 변화 과정은 전혀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럼 이제 반론한다. 은인이면 무조건 한 집에서, 가족으로 살아야 하나? 결혼하고 나서 자기를 태어나게 해준 부모하고도 따로 떨어져 산다. 그건 오로라와 설설희도 마찬가지다. 간병해준 은인이라고 한 집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남편의 부모 노릇해 준 누나들한테도 분가를 고집했던 오로라였다. 누가 인연 끊으라 했나? 한 집에 살지 않으면 더 이상 인연이 아닌가? 충분히 친한 형으로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

 

황마마가 가지고 있는 애정결핍이란 부분도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이제까지 황마마는 TV화면에서 단 한번도 애정결핍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았다. 오로라와의 결혼하고서도 자기 아내보다 누나들 편을 더 들 정도로 오로라에게 특별한 애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갑자기 별 정도 없이 시작한 설설희와의 '형제 관계'에서만 과거의 결핍을 느끼면서, 그걸 해소하고 있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걸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없음을 인정한 건,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오로라의 입을 빌려 말했다.

 

"우리 셋처럼, 똑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들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누나들에게 한 말이지만, 도무지 드라마를 이해 못하겠다는 시청자들에게 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반론은 안타깝기만 하다. 드라마 속 인물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 시청자들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며 웃고 운다. 시청자들에게 '인물'을 이해시킨다는 건,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래서 절대 같은 처지일 수 없는 악랄한 인물을 보면서도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동정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입을 이끌어 내는 건, 작가의 능력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오로라 공주>는 '파격'을 취하고 싶어 했으나, 단지 '파격'까지만이었다.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딱 그것까지만이라는 게 문제다.

'인물의 사망'으로써 얻는 결말이다. 작가 스스로도 그 이상한 관계에서 '황마마'가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벌려 놓은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다른 합리적인 방법이 없으니, 그를 죽이는 것으로만 보인다.

 

 

 

작가의 예전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갑자기 개그콘서트 보다 죽은 '소피아'가 생각난다. 여주인공의 비밀을 알아챈 그는 극중에서 없어져 주어야 했다. 하루 빨리 그녀를 드라마에서 치워야 했는데, 별로 그녀를 위해 애쓰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작가는 그때, 갑자기, 그리고 뜬금없이 그녀를 개그 프로그램 보면서 웃다 죽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그렇게 느낀다. 황마마의 죽음은, 그 죽음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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