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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의 기원 - 악의 기원, 그리고 악의 점화! (정유정)

스위벨 2016. 6. 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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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의 기원

 

/ 정유정 지음

 

'악'이란 종은 어떻게 잉태되고,

어떻게 점화하는가?

 

    종의 기원 줄거리, 내용    


26살의 청년 유진. 그는 16년 전 가족이 함께 간 여행에서 사고로 아버지와 형을 잃었다. 그리고 현재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양자로 들인 해진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와 형이 죽은 16년 전의 사건 이후, 유진은 정신과 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준 약을 매일 거르지 않고 먹어야 했다. 그러나 약을 먹으면서부터 유진의 신체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영선수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유진은 약 때문에 기록이 좋지 않아졌고, 그래서 16살 때 어머니 몰래 약을 끊고 수영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 도중 유진은 첫 번째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후 어머니는 간절하게 비는 유진을 외면하고, 강제로 수영을 그만두게 했다.

 

몸과 정신을 또렷하지 않게 만드는 약을 매일 먹어야 하고, 어머니의 숨막히는 규칙과 더불어 정신과 이모의 간섭 아래서 살고 있다. 하지만 한창 청년기의 혈기왕성한 유진은, 그 상황을 참을 수가 없고, 가끔 어머니 몰래 며칠간 약을 끊고 밤에 외출을 해서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진은 새벽같이 걸려온 해진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깬다. 잠 기운이 몽롱한 가운데 유진은 지난 밤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 몰래 나간 밤 외출에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어떻게 자신의 방 침대에서 깨어난 건지. 비릿한 피 냄새만이 맡아질 뿐.

어젯밤에 일 때문에 집에 들어오지 못한 해진은 어머니가 깨어나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걱정하고, 유진은 전화를 끊고 어머니를 확인하러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있는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소설, 종의 기원 )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아무 것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혼돈의 상황 속에서 시작한다. 장소는 집, 소설이 그리는 시간은 단 3일이다. 굉장히 압축된 공간과 시간이다. 유진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과, 중간의 한 번, 그리고 결말을 제외하면, 현재 벌어지는 모든 일은 집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거기에 화자는 '나'로 표현되는 1인칭이다. 유진의 시각에서만 모든 일이 그려진다. 더군다나 소설에서는 현재 벌어지는 '사건'이 중심이 아닌,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짚어 나간다.

 

이런 압축된 시공간과 인물, 그리고 과거 시점의 회상. 이러한 것들은 자칫하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요인들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소설 종의 기원은, 굉장히 힘있게 끝까지 긴장감 속에 독자를 몰아간다. 유진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 유진과 어머니가 감추어온 진실, 그 중간중간 외부에서부터 집을 향해 들어오며 유진의 목을 옥죄는 사람들, 바깥에서 벌어진 또 다른 살인사건. 아주 감각적으로 배열된 하나하나의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며,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물론, 독자들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그 동안 작가의 소설들은 주로 '사건' 중심이었다. 소설 7년의 밤, 28, 내 심장을 쏴라. 모두 여러 인물과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이 이어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이 책 '종의 기원'은 참 다르다. 한 인물이 이미 벌어진 살인 사건 속의 자신을 자각하면서, 자신조차 몰랐던 '나'를 적나라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내면의 이야기다. 그래서 작가는 1인칭 화자를 내세웠다. '악'으로 대변되는 인물, 유진. 그를 가장 잘 이해하려면 남이 해주는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관찰이 아닌, 내가 '유진'이란 인물 그 자체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밖에 없으므로.

 

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인물이 술술 다 이야기하도록 하는 방식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에서 어떤 사건을 두고 주인공이 조사를 하고 진실을 찾아내는 그 과정을, 유진 자신으로 하여금 하게 했다.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보고 비밀을 찾을 수 있는 이는 유진밖에 없으므로 범인도, 탐정도 모두 유진에게 맡긴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기억을 허물었다.


 

이처럼 소설 '종의 기원'은 '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악을 대변하는 인물 '유진'의 선택들을 보여준다. '악'이 크게 자리잡은 한 '인물'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기 위해 하는 선택들, 그리고 오히려 고민이 없기에 더 무서운 그 결과를 보게 한다.

 

악이 어떻게 잉태되는지, 어떤 과정으로 촉발되는지,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현실에서 아직 그 비밀을 모르듯, 소설도 섣불리 한 가지를 답으로 지목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도 '가능성'이 될 수 있는 상황들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유진이 원래 '악'을 내재하고 태어난 것인지, 어렸을 때 형과의 경쟁심이 특수한 정신 상태를 발현시킨 것인지,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억압된 기억이 그의 '악'을 더 팽창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모호한 잉태 과정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이어, 고개를 똑바로 들고 악이란 존재를 직시하고 있다. 원인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명확히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그 실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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