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7년의 밤 - 끝나지 않은 사건, 7년 전의 진실
/ 정유정 지음
세상은 '지난 밤의 일'을 '세령호의 재앙'이라 기록했다. 아버지에게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그의 아들'이라 불렀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아버지 '현수'가 세령댐의 관리자로 발령을 받아, 가족이 함께 세령 마을로 이사를 갔다. 아들 서원이 12살 때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서원의 아버지는 '세령'이란 이름의 소녀를 죽였다. 그리고 이어 소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의 부인이자 서원의 엄마를 죽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자라 댐의 수문을 열어 저지대 마을 주민의 반을 물에 휩쓸려가도록 만들었다.
그 후로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7년을 살았다. 친척들 집을 전전하다 결국엔 버림받고, 세령 마을의 사택에서 지낼 때 함께 방을 쓰던 '승환' 아저씨가 거둬주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쉽지 않았다. 그들은 서원의 과거가 밝혀질 때마다, 살던 곳을 떠나 돌아다녀야 했다. 어린 서원은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모습을 감춘 누군가가, 서원이 새로 전학 간 학교마다 과거 사를 낱낱이 펼쳐두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형 집행일자를 앞두고, 서원을 키워준 '승환' 아저씨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그리고 서원 앞으로 두 개의 소포가 배달되어 온다.
하나의 상자 속에는 '승환' 아저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소설 뭉치가 들어 있다. 거기에는 '세령호'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소포 상자에는 나이키 운동화 한 짝이 들어있다. 12살 서원에게 아빠가 사 주었던, 그의 이름이 써 있는 운동화. 7년 전 사라졌던 그 운동화가 서원에게 나타났다. 그날의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과 전부의 차이
나는 아저씨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절망적인 심정으로 지켜봤다.
"그러니까 전부 다 사실은 아니지요?"
한참 만에 대답을 들었다.
"사실이 전부는 아니야."
서원의 아버지는 한 소녀를 죽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곳에 함께 있었고, 일의 내막을 모두 아는 '승환'은, 서원에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서원의 아버지가 살인자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더라도 '전부'가 드러나면 그 '사실'이 다르게 받아들여 질까?
승환의 실종, 그리고 그에게 도착한 소포 2개를 시작으로, 서원은 전부를 찾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들 곁을 여전히 맴도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날의 어둠을 끝내기 위해서.
◇◆◇
500페이지 정도 되는 꽤 분량이 있는 책이지만, 하룻밤에 모두 읽어 내려갔다. 촘촘히 잘 짜여진 긴장감은 책의 장마다 숨겨져 있었고, 그 끝이 궁금해 책을 덮고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은 강렬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간다. 현재에서 시작해, 7년 전의 과거를 보여주고, 다시 현재의 끝나지 않은 사건으로 돌아온다. 그 여정 속에서 각 인물이 지닌, 과거의 상처나 내면의 갈등을 들여다 보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다양하게 얽힌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그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성격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사건의 배경인 '세령 마을'은, 그 스스로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되어, 마치 언젠가 한 번 가본 것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순간적으로 저지른 한 사람의 치명적인 행동이 훗날 되돌릴 수 없는 참극을 빚어냈다. 거기에는 아주 '공교로운' 타이밍과, 누군가의 집요한 악의가 더해졌다. 그리고 저마다의 인물이 지닌, 벗어나지 못한 과거의 그림자가 있었다.
사실은 사실이다.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부가 드러나면, 그 사실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코끼리의 코라고 생각한 길쭉한 관이, 사실은 뱀의 몸통일 수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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