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상의 조각들

[나 홀로 떠난 제주여행] 6. 산방산과 산방굴사, 그리고 짧은 만남.

스위벨 2014. 7. 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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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 

6. 안기고 싶은 산방굴사, 그리고 짧은 만남.

 


 

계단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었다. 오르고 오르고 또 올라가다가, 결국 두 무릎을 짚고 그 자리에 섰다. 계단 위에는 오르는 사람들과 내려가는 사람들이 서로 스쳐 지나간다. 이 길 위에 산방굴사가 있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해요?"

얼마나 남았는지라도 정확히 알고 가자 싶어 내려오는 아주머니들께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물어 보았다. 모두 세 분이었는데, 친구 사이인 것 같았다.


  

"한 5분쯤 남았나?"

"아니, 한 10분은 될걸?"

"금방이야, 금방!"

아주머니들은 서로서로 묻고 답하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그 중 한 아주머니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꼭 올라가요! 포기하지 말고. 제주도에서 본 것 중에 제일 멋지니까!"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은 다시 아래로 길을 잡아 내려가고, 나는 다시 허리를 펴고 위를 향해 걸음을 뗐다.

 

"아가씨!"

잠시 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내가 길에 뭐라도 떨어뜨렸나 싶어 돌아다 보니,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아까 내가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솔직히 산방굴사가 제주도에서 제일 멋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꽤나 볼만 한 건 맞아. 그러니 꼭 거기까지 올라가 봐요. 그리고 나머지 여행도 조심하고."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그 말을 건네고, 아주머니는 아래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향해 서둘러 내려가셨다.

 

잠시 스치고 말 사람, 남은 평생 얼굴 마주칠 가능성도 얼마 없을뿐더러, 정작 다시 마주치더라도 누군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의 짧은 인연.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순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난처럼 던진 본인의 말에 혹시 정말로 제주도에서 제일 멋지다 기대하면 어쩌나, 그래서 막상 올라가 실망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신 걸 게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고, 잘못을 정정할 줄 아는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고로움까지도.

얼마나 자주 나는 내 입으로 내뱉은 말을 후회하면서도, 정작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했는지. 하물며 이런 짧은 스침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제주도에서 '제일 멋진'은 아닐지라도, 제주도에서 '꽤나 멋진'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 기분좋은 짧은 스침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올랐다.

  

 

산방굴사. 산방산에 위치한 길이 10m, 높이 5m, 너비 5m의 자연굴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 이 절에서 수도한 스님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유배 온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굴 안에 안치된 부처님의 모습은 굳이 믿고 있는 종교를 따지지 않더라도 경건하게 다가온다. 나는 힘들게 올라온 길을 핑계 삼아 맞은편에 마련된 의자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계속 오고 갔다. 그리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한동안 머물며 마음을 담아 합장을 하고, 절을 올렸다. 한 아주머니는 내가 그 자리에 앉기 전부터 절을 하고 계셨는데,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도 계속 합장을 하고, 몸을 낮게 구부려 절을 이었다.

사람들이 와서 자신만의 간절한 마음을 털어놓는 곳, 그 속에 담긴 염원이 아마 이 장소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굴 천정에서 똑똑 떨어지는 약수를 한 곳에 받아 마실 수 있게 해 두었는데, 나도 플라스틱 바가지로 떠서 한 모금 달게 마셨다. 이 약수는 산방산을 지키는 여신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한다. 사랑이란,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에 없어서는 안될 아름다운 감정이기도 하지만, 여신에게마저 눈물로 아롱져 떨어지는 아픔이기도 한 모양이다.

 

산방굴사, 여신의 사랑도, 부처님의 자비도, 인간의 소망과 상처도 모두 안고 있는 곳. 그 언저리 어딘가에 나도 살포시 안겨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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