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상의 조각들

[나 홀로 떠난 제주여행] 7. 성산일출봉 - 해를 기다리는 마음

스위벨 2014. 7. 2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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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

7. 성산일출봉 : 해를 기다리는 마음

 

 

비가 내리길 바라는 제사가 기우제라면, 날씨가 맑길 바라는 제사는 무어라 할까? 그런 게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고 그저 '맑을 청()자를 써서 기청제?' 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용케도 맞았다. 찾아보니 정말로 있었다, 기청제라는 이름의 제사가.

 

그 효과에 대한 논의는 뒤로 미뤄두고라도, 딱 요즘의 내게 필요한 의식이 분명했다. 제주도의 겨울엔 원래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 건지, 아니면 내가 간 때가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시기인 건지, 아니면 정말 우연히 나의 날씨 운이 나빴는지, 그도 아니라면 정말 내가 비구름을 몰고 다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비와 함께 걸어야 했다.

  

 

아침부터 날씨는 꾸물꾸물하고 흐렸다.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했지만, 정작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성산일출봉에 오르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성산 일출봉 초입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몇 걸음 내딛자마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후두둑이 아니라 똑, 똑, 이라는 사실이었다.

일출봉에 들어선 많은 사람들은 입구의 매점에서 일회용 비옷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입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나도 만약을 대비해 하나 살까 하다가 배낭 속에 담긴 우산이 떠올라 그만두었다. 그렇게 잠시 똑똑 떨어지다가 그냥 지나가 주길 바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 결정을 놀리기라도 하듯,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빗방울이 굵어졌다. 그리고 야트막한 언덕과 잘 다듬어진 인공계단을 지나 가파른 돌계단에 다다랐을 때, 옳타쿠나 하는 듯이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빗소리는 점점 그 박자가 빨라졌다.

 

한 사람 겨우 비집고 지나갈 만한 좁고 울퉁불퉁한 돌계단, 거기다가 경사는 얼마나 아찔한지. 그런데 비가 내리자 바닥까지 미끄러워졌고, 그 길을 우산까지 받쳐들고 가자니 총체적인 난국이 따로 없었다. 겁 많은 나는 오금이 저려오며 추락의 위협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내리는 비를 그냥 맞기로 하고 우산을 접었다. 차가운 겨울비가 시리게 떨어졌다. 겨울 점퍼에 점점이 물 자국이 생기고, 조금씩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우비를 준비한 사람들에게 비는 마치 놀이처럼 보였다. 마치 비가 올 때 지붕이 있는 따스한 곳에 앉아 있을 때처럼 안도감이 느껴졌다. 결국 무언가를 어떤 결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준비와, 상황과,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각자의 몫인 모양이다.

  

 

그렇게 반쯤은 오기로, 그리고 반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우적우적 계단을 오르니, 결국 일출봉 꼭대기에 다다랐다. 

일출봉에 대해 듣기론, 모 우유의 광고처럼 우유 한 방울이 딱 떨어졌을 때 생기는 왕관 모양을 닮았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옛날옛적 땅이 말랑말랑하던 시절에(?) 하늘에서 누군가 어마어마하게 큰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렸고, 마치 그로 인해 생겨난 지형인 것만 같았다.

 

그곳에 올라 서서 가슴을 쫙 폈다. 아니, 굳이 내가 힘을 주어 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어깨가 쭉 펴지는 기분이 들었다.

뜨는 해를 바라보는 곳. 그리하여 이름마저도 일출봉인 곳. 아마 내일 해가 뜬다는 믿음이 없다면 오늘의 어둠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일 뜨는 해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확고한 것이기에, 오늘 밤 찾아온 어둠은 내일을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이리라.

  

 

나도 믿어보고 싶었다. 내일은 또 해가 떠오르리란 사실을. 그리고 그곳에 서서 나도 나의 해를 조용히 품어 보았다. 비록 내가 올라간 시간은 오후였지만, 그리고 그날은 비가 와서 잔뜩 화난 잿빛하늘이었지만 말이다. 구름에 가려져도 그 너머에 해는 존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해를 꿈꾸는 법이니까.

  

성산일출봉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이용시간 : 일출 1시간 전부터 일몰 후 1시간 (동절기 새벽 6시 ~ 19시, 하절기 새벽5시 ~ 20시)

이용 요금 : 성인 2,000원 / 청소년, 군인, 어린이 1,000원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전에 만들어진 화산체이다.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졌다. 뜨거운 마그마가 물과 섞일 때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마그마와 주변 암석이 가루가 되어 쌓이면서 일출봉이 만들어 졌다. 일출봉 정상에는 직경 약 600m, 면적이 약 21.44ha나 되는 사발모양의 분화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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