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성녀의 구제 - 히가시노 게이고

스위벨 2014. 1. 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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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성녀의 구제 – 히가시노 게이고

   

 

"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한 말은 내 마음을 죽였어.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 줘야겠어." 

 

 

소설은 한 부부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부인이 마음속으로 뱉은 대사, '그러니까 당신도 죽어줘야겠어' 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책의 시작부터 나는 당신을 죽이겠다, 라고 공공연히 선포하면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곧이어 남편은 시체로 발견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방향이라 하면, 보통은 하나하나의 단서를 모아가며 과연 누가 범인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인데, 이 소설은 당당하게도, '나는 너를 죽일 거야' 라고 단언하고 있다. 내가 범인이라고 말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형사들은 점차 용의자를 좁혀 나간다. 형사들이 주목한 가장 강력한 용의자는 죽은 피해자와 내연 관계에 있었던 여자, '히로미'다. 그녀는 피해자의 부인인 '아야네'의 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아마도 범인은 부인인 '아야네'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그러나 수사가 진행될 수록 아야네의 범행은 점점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만 한다. 그는 결코 그 시간에 남편을 죽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아야네에 대한 조사를 거듭하면 할수록, 그녀의 무죄를 점점 더 공고히 하는 꼴이 되고 만다. 때문에 분명 무언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다른 트릭이 있을 거라 생각 하면서도, '설마 정말로 아야네가 범인이 아닌 걸까?' 하는 혼란에까지 빠지게 된다.  

 

 

그토록 단단해 보이는 사건을 결정적으로 해결해 내는 사람은, 작가의 이전 작 [갈릴레오의 고뇌]에 등장했던 괴짜이자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교수'다.  물리학자가 과학적 추론에 기반을 두고 트릭을 파헤쳐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두 명의 형사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입장도 재미있다.

 

먼저 여형사 '우쓰미'는 직감적으로 왠지 아야네가 범인일 거라 추측하고, 그에 맞추어 수사를 한다. 하지만 막상 나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반대로, 남자 형사인 '구사나기'는 아야네가 결백하다고 믿는 쪽이다. 그녀의 알리바이는 물론이거니와, 아야네가 보여주는 행동과 품성이 왠지 살인을 저지를 것 같지 않다는 데 이유가 있다. 그에 더해, 그는 이미 아야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야네를 의심하는 우쓰미와 유가와 교수에 맞서,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전력으로 수사한다.

 

 

구제와 단죄, 그 사이에 놓인 '허수해'의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 경악의 결말!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가 쓰는 추리소설의 흡입력은 실로 대단하다. 한 번 책을 잡으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그의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작품과 친숙해져서 인지, 소설의 결말이 보이는 듯 하고, 이전 소설과 닮아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때문에 이야기가 약간은 뻔해 보이곤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도 예전과 같은 감탄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재미있네." 정도의 감흥에서 그친다고 할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실로 감탄을 했다. 그 동안 내가 '뻔해!' 하고 타박했더니, 작가가 '이래도?'하며 강렬한 한 방을 던져준 기분이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나서 느꼈던, 그 정교한 알리바이 공작에 감탄하던 느낌과 비슷하다.

   

 

서로 다른 범인을 주장하는 두 형사와, 그에 따라 다르게 펼쳐지는 수사 방식, 그리고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새롭게 풀어나가는 유가와 교수. 각자 다른 길에서 시작한 이 3명의 수사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이 드러났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의 제목을 또렷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성녀의 구제'란 제목 속에 담긴, 냉정하고도 단호한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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