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밤의 피크닉 - 온다 리쿠

스위벨 2014. 1. 2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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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밤의 피크닉 – 온다 리쿠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아침에 학교 정문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에 학교로 돌아오는 만 하루간의 보행제. 남녀공학 고등학교인 북고에서 실시하는 특별한 행사다. 고등학교 3학년생들의 수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를 앞두고, 이 보행제가 개최된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을 걷고 또 걸어야 하는 힘든 시간이다. 그러나 친구들과 오롯이 함께 하는 시간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전력을 다해 힘껏 뛰어야 하는 마라톤도 아니고, 천천히 일정 속도로 걷는다, 그것도 만 하루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서… 바로 그것이 보행제가 특별해질 수 있는 이유다.

 

천천히 걷는 동안에 머릿속으로는 수 많은 생각들이 교차해 지나간다. 지나는 풍경에 대해 이런저런 감탄도 하고, 옆에 친구와 함께 수다도 떨다가, 그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지치면, 생각은 곧 내면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쯤, 시간은 어느덧 밤으로 변해간다. 낮과는 다른 공기가 뿜어지는 듯한 밤의 시간.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기의 내면과 마주하고, 평소에는 미처 몰랐던 친구의 진심을 마주할 수도 있다. 밤의 어둠에 희미하게 한 꺼풀 가려져서, 평소에는 내밀 수 없었던 그들의 마음이 스르륵 새어 나오는 것이다.  

   

 

   

마음 속에 숨은 비밀

   

남학생인 도오루와 시노부, 그들은 단짝이다.  여학생인 다카코와 미와코도 단짝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와코와 다카코 사이의, 그리고 도오루와 시노부 간의, 고등학교 동성 친구 간에 맺어진 진한 우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카코와 도오루 사이에 몰래 감추어진 비밀이다.

 

여학생 다카코는 보행제를 앞두고, 큰 결심을 한 가지 한다. 보행제를 기회로 삼아 기필코 도오루게 먼저 말을 걸겠다고 말이다. 도오루와 다카코는 학교에서 비밀리에 사귀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사이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남들이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을 비밀이 있다. 그것은 제일 친한 친구인 미와코에게도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이다.

   

누구보다 친한 사이면서도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친구의 진심. 그것들은 함께 걷는 보행제와 어둑한 밤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더욱 진하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면서 다카코와 도오루 사이의 비밀이 밝혀진다. 이어, 비밀 속에 선 두 사람은 곁에 있는 친구들 덕분에 서로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기회를 얻는다.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왼편 이미지 속에 담긴 이 문구는, 보행제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는 물론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책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을 감탄했다. 모두 함께 걷는다, 그것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특별해 질 수 있었을까?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걷기'라는 소재 속에서, 인물들의 내면이 세밀히 그려진다. 보행제란 누군가와 발을 맞추어 쭉 함께 하는 시간이지만, 각자가 품은 생각과 내면의 갈등은 오직 자신만의 것이다. 그에 따라 보행제의 진행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인물들의 상황에 대한 묘사와, 낮과 밤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 속에서 작가는 주인공인 '다카코'와 '도오루' 두 사람을 둘러싼, 그리고 더 넓게는 친구들도 포함된 인물들 속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펼치고, 비밀을 감추고 또 드러내면서, 훌륭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 낸다.

   

◇◆◇

 

[밤의 피크닉] 내가 '온다 리쿠'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책이었고, 그 후로 온다 리쿠의 모든 작품을 열심히 찾아 보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다. 온다 리쿠는 다작을 하는 작가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기복이 꽤 크다는 평이 있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에 따라 작가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도, 그의 어떤 책들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반대로 '뭐지?'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경우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내가 온다 리쿠의 책을 찾아보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밤의 피크닉]에 있다. 비록 일부 작품에서 다소 실망을 했더라도, [밤의 피크닉]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그에게 기대하고, 소망한다. 다시 한번 이런 멋진 소설을 써 주기를.  

 

 

덧.

2006년에 일본에서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지는 않은 것 같다.

주연인 다카코 역은 '타베 미카코'가 맡았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다카코는 단정하고, 딱 떨어지는 느낌의 여고생이었다. 타베 미카코는 그보다는 더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느낌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는 배우라서, 그녀가 만들어 낸 다카코의 모습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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