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쯤, 윗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쿵쾅쿵쾅.
여러 집을 거치면서 이제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마무시한 소음과 진동이 전달되어 온다.
그래도 첫날과 둘째날은 그려려니 이해했다.
이사 왔으니 오죽 정리할 것들이 많겠는가.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이 다 가도록 소리는 잦아질 줄을 모르고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생활 패턴과 규칙을 파악하게 되었다.
전혀 알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새벽 4시, 아침 7시, 오후 12시, 오후 5시반,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각 타임별로 최소 30분에서 한 시간씩은 쿵쾅쿵쾅 끼익끼익..
천장이 정신이 없다.
엄마가 알아보신 바로는 윗집에 신혼부부가 이사를 왔단다.
그 전에도 물론 조용한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들 전에는 20대 청년 둘이 살았는데,
친구들이 자주 와서 술을 마시고 자고 가는 눈치였다.
그래도 그들은 잘 시간 넘어, 혹은 새벽 일찍 쿵쾅거리지는 않았으므로,
또는 장시간 쿵쾅거리지는 않았으므로...
그동안 우리는 한 번도 항의하지 않고 살았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올라갔다.
사람이 잠을 못 자게 하는 건 너무하다.
새벽 4시, 나는 한창 잘 시간에 쿵쾅 소리에 깜짝 놀라 깬다.
그렇게 깨서 한동안 뒤척이다가 쿵쾅 소리가 잦아든 5시에나 다시 잠이 든다.
그리고 7시에 다시 그 쿵쾅 알람에 잠이 깬다.
며칠에 한번씩은 새벽 4시에 시작한 소음이 7시넘어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윗집의 새댁은 나의 말에 억울함을 토로한다.
남편이 새벽 4시에 나가는 걸, 자기가 7시에 일어나 나가야 하는 걸 어쩌냔다.
남편이 4시에 일어날 때 자기도 같이 일어나서, 출근 때까지 다시 자지 않기도 한단다.
자신들이 직업을 바꿀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기들은 별로 시끄럽게 하는 게 없단다.
나는 현관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맨발 뒷꿈치에 시선이 간다.
큰 키를 가진 그녀의 맨발. 그보다 덩치가 더 크다는 그녀의 남편.
나는 그들의 걸음걸이에 대해 부탁했다.
뒷꿈치로 쿵쾅거리며 걷는 게 유독 시끄러우니 조심해 달라고.
그 소리가 밑에 집에서는 천장이 무너질 것처럼 울려서 증폭된다고.
새댁은 그럼 걷지 말고 살라는 말이냐고 반박한다.
나는 뒷꿈치에 무게를 실어 치지 말고 살살 걸어달라 대답한다.
나도 아랫층을 배려해 그렇게 걷는다고,
위아래층이 있는 구조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배려하고 산다고 말해준다.
별로 신통치 않은 표정으로 조심은 해보겠단다.
그 대답이 별로 미덥지는 않았지만,
더 집요하게 말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일단 내려왔다.
다음날 새벽 4시.
쿵쾅거림이 들리긴 한다. 그래도 한 반정도로 줄었다.
설핏 잠이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도, 내 부탁에 신경은 써주는 구나 싶었다.
그런데 참... 뭐랄까.. 단순하달까, 정직하달까.
내가 발소리를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딱 발소리만 조심한다.
끼익끼익! 쿵! 덜컹! 드르럭!
도대체 하루 종일 뭐하나 싶다가,
나중에는 저집 사람들은 참 체력도 좋다 싶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집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 4시에 준비하고 나간 남편은 12시면 돌아와서 소리를 내고,
아침 7시에 출근 준비해 나간 부인은 저녁 5시반에 돌아와 소리를 낸다.
그들은 TV도 안 보고 낮잠도 안 자고, 늘상 몸을 움직이나 보다.
늘 시간이 날 땐 방 안의 가구들을 밀고 땡기고 여념이 없나보다.
참 부지런하긴 하다.
못참겠다 싶어 봉으로 천장을 두드려 항의를 해봐도, 한 5분쯤 중단했다 다시 시작한다.
끼익! 쿵! 덜컹덜컹!
층간 소음 해결 방법에 대해 검색해 본다.
하지만 방법을 궁리해봐도 참 뾰족한 수가 없다.
개인이 소음을 측정하기도 쉽지 않고, 법적인 대응도 어렵다.
일일이 반응하며 맘 먹고 복수하자니 내가 더 괴롭다.
몇 주 쯤 시달리다 나는 음악을 켜기로 했다.
남들처럼 거창하게 층간소음 복수용 우퍼 스피커는 아니고.
원래 가지고 있던 일반 스피커를 약간 천장 가까이 놓는 것으로 한다.
물론 스피커는 내 방에 있고, 음악 소리는 내가 제일 크게 들린다.
그러므로 복수용 소음이나 기괴한 음악은 내가 사절이다.
내가 괴롭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큰 음량으로, 나도 함께 들을 음악을 켠다.
가수 신해철의 노래를 선택했다.
윗집에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음악을 켠다.
사실 윗집에도 소리가 전달되라는 의도도 있지만,
음악을 켬으로써 거친 층간소음을 가려보겠다는 목적이 더 크다.
처음에는 노래를 틀고도 그저 짜증만 가득 나더니,
요새는 나도 모르게 왠지 감성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역시, 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리운 가수의 노래를 즐긴다.
윗집 새댁은 아직 20대 중반쯤인 것 같던데,
그녀가 가수 신해철을 알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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