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속죄 - 미나토 가나에

스위벨 2013. 12. 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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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속죄 – 미나토 가나에

 

여름 방학, 한적한 마을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5명의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놀고 있다. 그때, 한 남자가 아이들에게 다가온다.

"아저씨가 환풍구를 고치러 왔는데 사다리를 가져오지 않았다. 너희 중에 한 명이 아저씨 목마를 타고 올라가서 열어주면 좋겠다. 아저씨를 도와주면 끝나고 너희 모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

5명의 아이들 중에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한 소녀가 선택되고, 그렇게 아저씨의 손을 잡고 간 아이는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운동장에서 함께 놀던 나머지 4명의 소녀들이다.

 

 

강요된 속죄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조사에 들어간다. 그러나 4명의 소녀들은 모두 그 남자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고, 살해된 아이의 부모는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나 마을에서 이사가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범인을 잡을 수 없음에, 그리고 명백한 목격자임에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는 죽은 딸의 친구들에게 화가 난다. 그러다가 급기야, 혹시 나머지 네 아이들이 자신의 딸을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결국 답답한 피해자의 엄마는 이사 가기 전날, 네 아이들을 집으로 모아 엄포를 놓는다.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까지 범인을 잡아내던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속죄를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복수하겠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아이들에게 단지 목격자란 이유로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어찌보면 나머지 네 아이들도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러나 네 명의 아이들은 그녀의 말을 결코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친구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는 죄책감과 그 후에 목격한 참상에 대한 무서운 기억, 혹시라도 범인이 자신에게 해코지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범인을 잡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무기력함. 그리고 이제 그 위에 피해자 엄마의 압박까지 더해진다.

   

   

과거의 시간에 갇히다

   

아이들에게도 그 사건은 충격이었다. 어서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였다. 그러나 친구 엄마의 무서운 엄포로, 아이들은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도저히 잊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네 소녀의 성장 과정에서 여실히 모습을 드러낸다.

딱 보기에도 그 사건 때문에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외출을 싫어하고, 학교도 가지 못한다. 그러나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아이들도, 사건의 기억으로 인해 어느 한곳이 굽어져 자라난다.

 

과거의 기억과 강요된 속죄의 압박이 네 사람의 삶을 짓누르고, 성인이 된 네 사람의 삶은 저마다의 웅덩이 속으로 곤두박질 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잊혀진 것 같았던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 속에 얽힌 사건의 진실은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독백, 말하기의 방식

   

미나토 가나에의 유명한 전작, <고백>의 서술 방식은 독백이었다. 또한 <속죄> 후에 나온 <왕복서간>에서도 작가는 편지글이라는 독백체의 서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독백을 선택했다. 그런 점에서 이건 <고백>의 다른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독백체가 가진 큰 힘이라 하면, 인물의 내면을 그 깊은 곳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관찰자의 시점이 아닌 주인공 시점, 더군다나 다른 인물의 행동이나 대화를 통한 간섭 없이, 오로지 1인칭 화자의 말에 의해서만 전달된다. 그러니 당연히 '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솔직하고 정확히 드러낸다.

   

미나토 가나에는 연이어 자신의 작품에 이 독백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속죄>는 전작인 <고백>과 서술 방식도, 구성도 매우 흡사하다. 이건 마치 자기복제인 것도 같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작가의 특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에 딱 맞는 말하기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고백'이란 작품이 준 새로움과 인상이 워낙 강했기에, 이 작품이 그보다 감흥이 덜한 건 사실이다. 거기에 말하기의 방식까지 비슷하다 보니, 가끔 두 작품이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까지 한 사람의 삶에 끼친 영향이라든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뻗어 나가는 결과를 지켜 보는 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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