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상의 조각들

[나 홀로 떠난 제주여행] 9. 우도 - 무덤이 있는 풍경

스위벨 2014. 8. 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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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 

9. 우도, 무덤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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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는 작은 섬이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상당히 있기 때문인지, 항구가 2개 있었다. 몹시도 게으른 여행자였던 나는 우도에 도착해 항구에 비치되어 있는 안내서를 받아 들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방금 내가 배를 타고 들어온 우도봉 쪽의 항구가 그 중 하나였고, 홍조단괴 해빈을 지나서 항구 하나가 더 있었다.

  


아무래도 1시 배를 타고 바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다른 쪽 항구에 전화를 해 보니, 2시 30분배까지는 운항이 확정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조금의 시간을 더 벌었다. 하지만 우도봉이나 검멀래 해변은 내가 걸어온 것과는 반대방향이라,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자칫 배 시간에 늦기라도 했다가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나는 다른 목적지로 급하게 향하는 대신 항구 주변의 우도를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내가 찍은 사진 속 바람이 소거된 우도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혹은 외국 전원 드라마에 나오는 언덕 위의 작은 집처럼, 마치 꿈결인 것 같았다. 더군다나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섬은 초록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를 덧입혀 보면, 거센 바람과의 사투는 여전했다. 내가 찍어온 우도의 사진 한 컷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동영상은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끝까지, 쏴아, 파아, 쓰아아, 하는 거친 바람 소리가 휩쓸고 지나갔다.

 

혼자 천천히 동네 길을 지나 걷다 보니 특이한 점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길에는 군데군데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 특별히 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도 아니고, 길가 혹은 집 옆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육지에 사는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외곽, 혹은 산 어디쯤에 묏자리를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작은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섬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자연여건상,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고, 죽음을 맞이하고, 그 후에도 이곳에 묻히는 게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산도 없고 외딴 곳도 딱히 없는 작은 섬, 당연히 집 근처, 길가, 밭 한 켠 등 삶의 공간 주변이 무덤이 되었겠지.

  

 

그런 무덤을 몇 개쯤 지나다 보니, 얼핏 무심한 듯 놓여있지만, 그만큼 친근하기도 한 것 같다. 자주 봐서 별 감흥은 없지만, 그 이면에 편안함이 있는 사람의 감정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무덤은 공포일 수도 있지만,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무덤 곁을 지나는 걸 무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일상일 테니까.

 

하지만 그 편안함이란 감정은 편리한 반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군가를 대할 때 긴장감이 없다는 것은 한편, 긴장할 필요조차 없게 되어버리는 것. 새롭지 않고 늘 보던 것. 새삼 따로 떠올릴 필요가 없는 것. 권태로운 것. 일상이란 말캉말캉한 단어 속에, 편안함이란 촉촉한 단어 속에 날카롭게 숨어 있는 검은 함정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금새 배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섬을 뒤로 하고 항구로 돌아가 배에 올랐다.

 

몰아치는 바람만 아니었다면, 겨울의 우도는 푸르고, 맑고, 청아했다. 더군다나 그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나 혼자뿐일 때가 많아, 섬 전체가 오로지 나를 위한 내 것인 듯한 기분을 잠시 가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다 못 보고 아쉽게 돌아온 우도는, 나에게 다음에 대한 기대를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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