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모성 - 미나토 가나에

스위벨 2013. 12. 1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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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성 – 미나토 가나에

 

우리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모성을 믿는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엄마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성스러운 어떤 것임을. 세상 곳곳에서 모성이 없는 듯한 부모가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지는데도, 그건 단지 기이하고 잔인한 사건으로 치부하고 말이다.

모성은 일종의 성역이다. 사람들은 종교를 믿듯, '모성'에 대하여도 확고한 믿음을 보낸다. 그리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모성>은 그런 믿음에 대해 과감히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물음은 다소 위험하고, 위태롭다.

 

 

◆◇◆

 

 

한 고등학교 여학생이 4층인 자신의 집에서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은 단순히 그 여학생의 자살시도 쯤으로 치부되는가 했다. 그러나 이윽고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혹시 그녀의 엄마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냐는. 여학생에 의한 자살 시도일까, 아니면 엄마에 의한 살인 시도일까.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엄마의 이야기를, 그리고 딸의 이이기를.

 

엄마다.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다.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줄수록 친정 엄마가 칭찬을 해 주었다. 엄마의 그 칭찬을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어서 더욱더 노력했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딸을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그것이 돌아가신 엄마의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태풍이 몰아쳐 온 날, 산사태와 화재로 친정엄마는 목숨을 잃었다. 그건 친정엄마가 손녀를 살리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친정엄마가 그토록 살리고 싶어했던 건, 곧 자신의 딸이기도 했다. 결국 친정엄마는 죽고, 딸은 남았다.

 

딸이다. 누구보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부모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라고 누가 그랬나? 나에게 그런 사랑을 준 건, 돌아가신 외할머니뿐이다. 엄마의 언저리를 돌며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도무지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무언가 시도를 하려할 때마다, 엄마와의 관계는 어그러지기만 한다. 자연히 점점 더 엄마 앞에서 긴장되고 주눅이 들고, 엄마를 바로 보기가 힘들어 진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

 

처해 있는 현실의 상황이 힘들수록, 엄마는 죽은 친정 엄마를 그리워한다. 친정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딸을 먼저 구해내라고 했다. 그게 엄마인 거라고. 하지만 그녀는 후회한다. 그게 정말 잘한 일일까? 내 불행의 원인은 어쩌면 딸 때문인 것이 아닐까?

 

 

불이 나던 그날,

아무래도 딸을 구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엄마와 딸의 불편한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아마도 그 사고시점부터일 것이다. 엄마는 그 사고로 잃어버린 친정 엄마가 그립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자신이 그날 보인 행동을, 어쩌면 딸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마음 어딘가에 깊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딸의 마음 또한 그렇다. 자신이 그날 굳이 할머니의 품을 파고들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가 남았다. 자신을 구하느라 할머니를 먼저 구해내지 못했을 거라는 죄책감이 있다. 엄마가 엄마를 잃은 건, 자신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모녀의 갈등이 낱낱이 드러날 때, 그날의 사건이 숨기고 있는 진실도 드러난다.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 <고백>, <속죄>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기서도 작가는 독백체를 사용한다. 내가 읽은 작가의 책 속에는 어김없이 독백체가 등장하고,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책의 전체는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이 화자의 독백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아주 당연하게도, 책 속에서는 각자가 지닌 속마음이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본능이라는 그 모성에 의문을 던진다. '모성'이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신화가 아닐까, 단지 주입된 후천적 감정이 아닐까 하고.

 

책 속에 담긴 딸과 엄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 어딘가가 상당히 불편해 지는 걸 느낀다. 인간의 어두움을 표현한 작품을 마주할 때 곧잘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숨겨두고픈 인간의 그러한 면모를, 미나토 가나에는 적나라하게 꺼내 눈 앞에 들이민다. 조금 불편하지만 작가가 내 앞에 놓아둔 그 질문을 회피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난 후의 판단은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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