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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 따끈한 빵이 전하는 온기

스위벨 2014. 2. 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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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しあわせのパン, Shiawase no pan)

- 따끈한 빵이 전하는 온기

 

/ 미시마 유키코 감독

/ 하라다 토모요, 오오이즈미 요 출연

 

 

 

여주인공 '리에'는 어렸을 때 [달과 마니]라는 그림책을 좋아했다.

 

그림책 속에서 마니라는 이름의 소년은 자전거에 달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린다. 그런데 어느 날, 야윈 달이 말한다. "태양을 따다 줄래? 하늘에 같이 있으면 너무 눈이 부셔." 그러나 마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안돼. 태양을 따 버리면 너 또한 없어질 테니까. 중요한 건 네가 비춤을 받고, 또 비추어 주고 있다는 거야."

 

 

그러나 어른이 되어 리에는 사회생활에서 상처를 입고, 단 하나의 가족인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리에는 생각했다, 더 이상 나에게 마니는 없다고. 그때 '미즈시마'가 제안한다. 함께 츠키우라로 가서 살자고. 그래서 리에와 미즈시마는 부부가 되어 츠키우라의 호수 곁에 카페 마니(mani)를 연다.

 

미즈시마는 손으로 반죽을 치대어 빵을 만들고, 옛날식 오븐에 구워낸다. 리에는 커피를 내리고 스프를 끓인다. 카페 마니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그 중에는 고민으로 힘들거나, 상처가 있거나, 좌절을 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리에와 미즈시마는 그들에게 갓 구운 빵과 따뜻한 커피를 내어준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카페 마니에는 계절에 흐름에 맞추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름에 찾아온 청년, 가을에 찾아온 중년 남성과 어린 딸, 겨울에 찾아온 노부부. 그들은 고민하는 이유도, 상처받은 원인도, 절망의 정도도 다 다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리에와 미즈시마는 그들에게 따끈한 빵을 내고, 어떨 때는 스프를 내고, 또 어느 때는 갓 지은 밥과 국을 내기도 한다. 음식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요건임과 동시에, 때론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따끈한 음식은, 외로운 누군가의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빵 반쪽의 의미

 

미즈시마와 리에는 빵을 먹을 때, 항상 반으로 쪼갠다. 리에가 쪼갤 때는 그 반쪽을 미즈시마에게 건네고, 미즈시마가 쪼갤 때는 반대로 리에에게 건넨다. 그들은 항상 빵을 쪼개어 상대에게 건넨다.

 

 

빵을 만드는 '미즈시마'는 '깜빠뉴'란 이름의 빵을 좋아한다. 깜빠뉴는 꾸미지 않은 수수한 빵이다. 커다란 덩어리로 되어 있어,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하는 빵이기도 하다. 그 '깜빠뉴'란 이름은 친구란 단어로부터 왔다고 한다.

 

카페 마니에 빵은 많고, 작은 빵을 굳이 쪼개어 먹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속을 채울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느낌이 좋아서일 것이다. 생명이 이어지게 하고, 삶을 꾸려갈 힘을 주는 음식. 너와 내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건, 단순히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완전한 치유는 없다

 

영화는 누군가의 상처와 치유를 말한다. 그런데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상당히 노골적이다. 영화는 줄곧 누군가의 입을 통한 직접적인 말과 대사로, 혹은 과장된 인물들의 행동으로 전달한다. 영화 속에 벌어지는 상황과 두 사람의 표정, 몸짓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영화는 굳이 그렇게 무언가를 직접 가르치려 든다.

 

영화를 보면서 간혹, 저 빵과 스프의 값은 얼마인가, 저들은 저걸 팔아서 과연 생활이 꾸려질까, 하는 현실적 문제들이 떠오르는 건, 아마 영화 내내 느껴지는 그 낯간지러움 에 대한 반사작용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마음에 와 닿는 구석이 있었다. 영화가 건네는 치유는 얼핏 미봉책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상처가 고작 빵 한 쪽으로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위로를 전하는 역할의 '리에'조차, 자신의 상처에 여전히 고민하고 아파한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슬픔이 모두 사라질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는 슬퍼하지 말라고, 아파하지 말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곁에 있는 그 사람과 함께 슬퍼하라고 이야기한다. 빵을 쪼개어 누군가에게 건네듯, 함께 슬퍼하라고 말이다.

 

 

"마니가 있어서 달이 있고, 달이 있어서 마니가 있다." 태양은 달을 비추고, 달은 그 빛을 받아 밤을 밝힌다. 그리고 마니는 그 빛을 받은 달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지게 한다. 우리는 늘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누군가와 함께여야 하는 존재이다. 둥글게 둘러 서서, 빵 한쪽의 온기를 나누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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