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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사전 - 말을 엮어, 삶을 건너다.

스위벨 2014. 2.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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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사전 (舟, The Great Passage)

- 말을 엮어, 삶을 건너다.

 

/ 이시이 유야 감독

/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조 출연

 

 

낡은 옛날 건물에 자리잡은 출판사의 뒷방 부서, 바로 퇴물 취급을 받는 사전편집부다. 그곳에 정년 퇴임을 앞둔 '아라키'로 인해 공석이 생기고, 그 자리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라는 직원이 영입되어 온다.

 

말도 잘 못하고, 분위기도 음울하고, 왠지 사회 부적응자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어리숙한 남자다. 장점이라고는 그저 성실한 것 하나뿐이다. 원래 사전 편찬부에 있던 '마사시(오다기리 조)'는 도무지 그가 이해되지 않는다. 마사시는 말 그대로 발랄하고 자신감 넘치는, '요즘 청년'이기 때문이다.

 

      

 

사전편집부는 새 사전 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사전의 이름은 대도해. 그 사전의 편집 방향은 '오늘을 사는 사전'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현재의 삶을 담은 사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 편찬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권을 편찬하는데 7년, 10년, 혹은 20년 이상 시간이 들어가는 장기 작업이다.

 

 

하지만 마지메는 곧 사전에 흥미를 느끼고, 그 일에 빠져들게 된다. 그 속에서 마지메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알게 되고,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도무지 통할 것 같지 않던 마사시(오다기리 조)와도 친구가 되어 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13년이란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대도해의 출간일이 잡혔다. 많은 아르바이트를 동원해 사전의 마지막 확인 작업을 해 나가던 출판 편집부는 누락된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전의 출간일이 잡혔으나, 이제까지 해온 작업을 다시 이전으로 돌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말'을 읽어내는 방법

 

"당신, '오른쪽'이란 단어를 어떻게 설명하겠어?"

 

사전편찬부의 새 직원을 물색하러 다닐 때, '아라키'가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따로 생각해볼 필요조차 없었던 그 단어들을 설명해 내야 한다는 건, 참 난감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답이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마지메가 하숙집 할머니의 손녀딸인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를 보고 사랑에 빠지자, 편집부의 감수자는 마지메에게 '사랑'이라는 단어의 해설을 쓰도록 맡긴다. 직접 열렬한 사랑에 빠진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란 인간의 삶 자체다.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는 모두 '언어'라는 것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모든 말은 사람의 삶 속에서 태어나고 소멸한다. 때문에 사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의 삶 속으로 치열하게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을 만들고픈 그들은 더욱 더 그렇다.

 

 

 

단어를 엮어, 삶을 건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과, 일본에서 개봉할 때의 제목은 '배를 엮다'였다.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수의 단어들 속에서 표제어로 쓸 단어를 추려내고, 그 각 단어의 해설을 쓰고, 용례를 적고, 그 용례를 쓰기 위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예들을 직접 하나하나 수집해야 한다. 이는 드넓은 언어의 망망대해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엮어 나가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건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삶의 모습과도 같다.

 

사회와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듯이 보였던 마지메. 그는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고, 어떻게 사람과 친해지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듯 단어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나가고, 그를 통해 삶으로 한 발 더 가깝게 들어가게 된다.

말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도구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그 많은 말과, 사람과, 그들과의 관계가 함께 엮어져, 삶이란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배가 되어 준다.

 

 

 

 

각자가 만들어 내는 한 권의 사전

 

 

그들은 사전을 만들고자 했고, 한 권의 사전은 이내 곧 그들의 삶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사랑을 만나고, 누군가의 탄생을 맞이했으며, 또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게 온 인간사를 아우르며, 비로소 사전 한 권이 완성된다.

 

사전이 그들의 삶이었듯, 삶은 다시 한 권의 사전이 된다. 내 하루하루가 모여, 나만의 '대도해'가 엮어지는 것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 안의 것들을 최대한 표현하려 애쓰고, 매끄러운 종이를 세심하게 잘 골라야 하며, 단어 하나 하나를 관심 있게 들여다 봐주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은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고서도 한참 훗날에야 받아볼 수 있다. 20년이 걸릴지, 3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삶의 끝날까지도 작업은 계속된다. 그러나 내가 평생 만든 사전이 그저 쓸모 없는 종이더미로 남지는 않아야 하기에, 우리는 오늘을 또 열심히 살아 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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