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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멜리에 – 고독한 그녀의 유쾌한 반란

스위벨 2014. 2. 1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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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멜리에 – 고독한 그녀의 유쾌한 반란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Amelie Of Montmartre)

 

/ 장 피에르 주네 감독

/ 오드리 도투, 마티유 카소비츠 주연

 

 

어렸을 적, 군의관인 아버지로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교사인 엄마에게 집에서 따로 교육받으며, 혼자 놀면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아멜리에와 함께 성당을 찾았다가, 위에서 추락한 한 관광객에게 깔려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성장하자마자, 그 답답한 집에서 독립해 나왔다. 그리고 작은 카페의 종업원으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고독하게 살아간다.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 TV화면을 통해 알려지던 날, 아멜리에의 삶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집 한쪽 벽 안에서, 누군가의 어렸을 적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아멜리에는 오래 전 자신의 집에 살았던 사람에 대해 추적한다. 그리고 아주 우연인 것처럼 공중전화 박스 위에 보물상자를 올려놓고, 그가 지나갈 때를 기다려 전화를 건다. 그는 기적이라도 만난 듯 매우 감격해, 연락을 끊고 살던 딸을 만나야겠다 말한다.

 

 

누군가에게 그러한 기쁨을 주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찬 아멜리에. 그녀는 이내 다른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난다. 기차역의 증명사진 부스 근처 바닥을 뒤지는 남자로, 이름은 니노다.

아멜리에는 우연히 그가 떨어뜨리고 간 앨범을 줍게 된다. 그 앨범 속에는 증명사진 부스 근처에서 주운 수 많은 사람의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다. 찢어진 것은 다시 퍼즐처럼 맞춰져서. 아멜리에는 앨범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녀는 남자에게 지시를 내리고, 힌트를 주어 그가 자신을 찾아내도록 한다. 그러나 막상, 그녀 코앞까지 찾아온 니노를 보자,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낼 자신이 없다.

 

 

 

외로운 사람들, 고독한 그녀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어딘가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채소 가게 종업원은 팔이 불편하고, 카페 한 켠의 담배가게 주인은 늘 알레르기 때문에 신경질적이다. 아멜리에의 아빠는 혼자 어두운 집 안에 박혀,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집착증을 가진 남자는 자기의 옛 연인을 찾아와 계속해서 지켜본다. 카페의 여주인은 다리를 절고, 같은 건물에 사는 화가는 뼈가 약해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아멜리에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는 외톨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연인도 없다. 그녀의 낙은 넓적한 돌이 보일 때마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가, 혼자 운하에 가서 물수제비를 뜨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고독한 인물인 아멜리에는 그런 결핍된 사람들의 삶에 약간의 윤기를 더해주는 것으로 기쁨을 찾는다.

 

 

 

비극을 보는 방식

 

놓여있는 상황이나 처지를 보자면, 아멜리에는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다. 심장의 문제, 학교를 가지 못한 탓에 늘 외톨이였고, 어머니는 아주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집은 키우는 물고기조차 자살을 감행할 정도로 어둡고 숨막혔다. 그래서 아멜리에도 성인이 되자마자 그 집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사실들은, 비극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희화화 되어 그려진다. 아멜리에가 가진 심장병을 설명하는 부분도 그렇다. 성인이 된 그녀는 실제로 두 번의 심부전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 초반의 나레이션은, 어린 아멜리에는 아버지가 그녀를 진찰해주는 것이 너무 좋아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른 채 아버지는 그것을 심장병으로 생각해 진단을 내렸다, 고 서술한다. 어머니의 끔찍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는, 그날 신은 한 관광객으로 하여금 어머니의 삶을 끝내게 할 작정이었나 보다, 라고 말한다.

 

제 3자의 입장에서 꽤 거리를 두고 진행되는 나레이션은, 그렇게 그녀의 비극적 상황들을 더없이 담백하고, 감정 없이 전달한다. 그러한 방식은 그녀의 그 많은 불행들을 그다지 불행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건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의 결핍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숨어있던 모습을 드러내다

 

아멜리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그렇게 남들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화가 할아버지의 방을 망원경을 이용해서 지켜보고, 카운터 뒤에서 이제 막 시작된 담배코너 주인 여자와 집착남을 아무도 모르게 이어준다. 복수를 할 때도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때도 마찬가지다.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렇게 숨어서 지낸다.

 

 

그래서 그녀는 '니노'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도 숨어 있으려 한다. 그녀가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가 찾아오자 쉽사리 자신을 내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용기를 준 건, 같은 건물에 사는 화가 노인이다. 뼈가 유리처럼 약해서, 평생 집 안에서 르느와르의 그림을 그리면서 사는 인물이다. 그는 르느와르의 그림 속 소녀를 통해, 아멜리에를 본다. 그리고 아멜리에가 겁을 먹고 숨으려 할 때 이런 말을 전한다.

"네 뼈는 나처럼 유리로 되어 있지 않잖니. 가서 부딪쳐보렴."

그 말에 힘입어 문을 박차고 나간 그녀 앞에는, 그토록 숨어서만 지켜보았던 '니노'가 서 있다. 숨어 있던, 늘 모습을 감추고 살던 아멜리에는 그렇게 세상 속으로 나왔다.

 

◇◆◇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상당히 간결하고 담백하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제 3자의 시선은 결코 관객들을 절망이나 슬픔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절망을 감싸고 있는 건 오히려 웃음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픔은 다시금 유쾌해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영화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나 어딘가가 부족한 채로 살고 있어. 그렇다고 해서 웃어서 안 될 이유가 뭐야? 어쨌든 즐거울 수 있잖아.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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