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스위벨 2014. 2. 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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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방과 후 – 히가시노 게이고

 

 

여고의 수학교사이자, 양궁부 동아리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마에시마'. 그는 최근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 신경이 날카롭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지만, 혹시 학교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교장이 만류하고 있다.

 

그때, 학교에서는 정말로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 탈의실에서 학교 교사인 '무라하시'가 죽은 것이다. 그는 마에시마와 마찬가지로 수학교사였으며, 학생지도부를 맡고 있기도 했다. 그의 사인은 청산가리에 의한 사망. 그 살인 현장의 첫 번째 발견자는 바로 '마에시마'와 양궁부 부장 '게이'였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사건은 어느덧 잠잠해져 간다. 그리고 학교는 축제 맞이 준비로 바쁘다. 동아리 행사로 각 동아리가 가장행렬을 하기로 정하고, 양궁부는 '서커스'를 주제로 가장행렬을 준비한다. 그리고 교사인 '마에시마'도 동아리 아이들의 권유에 따라 '술 취한 피에로'로 분장해 참가하기로 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선생님들이 분장할 인물이나 동아리의 가장행렬 내용이 미리 퍼져 나간다.

 

그 때문에 '거지'로 분장하기로 했던 한 체육교사 '다케이'는 마에시마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이미 다 알려져서 김이 빠질 수 있으니, 서로 역할을 몰래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마에시마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다케이가 그 대신 피에로로 가장행렬을 시작한다. 그리고 술병에 든 물을 마시며, 술 취한 피에로를 연기한다. 그리고, 다케이는 죽고 만다. 그가 술 마시는 연출을 위해 사용한 병 속의 물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다케이와 마에시마가 역할을 바꾼 걸 알지 못했다. 피에로 분장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진했고, 그는 미리 마술상자 안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채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역시 마에시마를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마에시마는 여전히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 나름대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

 

 

 

밀실 살인, 정교한 트릭

 

탈의실에서 발생한 첫 번째 사건은 곧 막다른 벽에 부딪치고 만다. 자살이라기엔 정황상 무리가 있고, 타살이라기엔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탈의실이 '밀실' 상태였던 것이다. 남자 탈의실의 미닫이 문에는 나무 막대기가 버팀목으로 사용되어, 밖에서 문이 열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문으로 범인이 빠져 나오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학교의 수재 학생 하나가 그 트릭을 밝혀낸다. 여교사가 탈의실을 사용할 때를 기다려, 미리 여자 탈의실의 자물쇠를 바꿔치기한 트릭 이라는 것이다. 그 후 범인은 남자 탈의실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그곳의 문을 열리지 않도록 나무 버팀목을 놓았다. 그 후 남자탈의실과 여자탈의실 사이에 있는 칸막이 벽 위의 있는 틈으로 여자 탈의실로 건너갔다. 그리고 여자 탈의실 문을 통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때마침 사건을 맡은 형사도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수사는 그에 맞추어 용의자를 좁혀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부분들이 남아있다.

 

 

 

살해의 동기

 

"애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거짓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죠. 자기 몸이나 얼굴일 수도 있고... 좀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추억이나 꿈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을 부수려고 하는 사람,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는 뜻도 되겠지요."

 

이 소설에서 가장 의외성을 띄고 있는 건, 바로 살해의 동기가 아닌가 싶다. 소설은 진행되는 동안 그 살해의 동기에 대해 힌트를 주지 않는다. 다만 '여고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유로 삶을 포기할 만큼 큰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을 언급해줄 뿐이다. 학생들의 심리적 상태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미미하고, 포괄적일 뿐이다.

 

범인이 왜 살해했는지 내내 오리무중인 가운데, 마지막에 가서야 그 이유가 갑자기 짠! 하고 얼굴을 드러낸다. 당연히 주인공인 '마에시마'에 의해서, 마치 탐정 만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드러나는 살해의 동기는 상당히 의외이고, 당황스러운 면도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여고생'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하니, 굳이 안 된다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기야, 살해의 이유란 보통 타당하기 보다는 타당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은 법이니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정식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무려 1985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그리고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처음 데뷔 때부터 남달랐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숙련된(?) 나중 작품들에 비해 매끄럽지는 않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건에서 사용된 트릭과 그 트릭에 숨겨진 의미, 사람들간에 얽혀있는 관계, 그리고 마지막에 또 한번 드러나는 반전은, 꽤나 놀라웠고, 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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