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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 “늘 이렇다니까. 꼭 한발씩 늦어.” (고레에다 히로카즈)

스위벨 2016. 8. 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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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하라다 요시오, 유 출연

 


그 해 여름,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마음이 닿을 때까지,

걸어도 걸어도.


[영화, 걸어도 걸어도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아베 히로시, 키키 키린 출연]

 

    걸어도 걸어도 줄거리, 내용    

 

료타(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결혼할 여자 유카리(나츠카와 유이)와, 그녀의 아들을 데리고 부모님의 집을 찾는다. 부모님의 집에는 이미 여동생 지나미(유)가 가족들과 함께 와 있다. 그들이 고향집을 찾은 이유는, 형 '준페이'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형은 10여년 전 바닷가에 빠진 한 소년을 살리고, 자신은 죽었다.


 

형이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장남'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인 료타는 늘 비교만 당하는 기분에 부모님과 거리 있는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어머니 토시코(키키 키린)와 아버지 쿄헤이(하라다 요시오)는 료타가 아들까지 있는 사별한 여자와 결혼하는 게 마땅치 않지만, 막상 며느리 유카리에게는 잘 대해주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무심한 척 한마디씩 꺼내 유카리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아들 료타에게는 유카리와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이기적인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미 늙으신 부모님을 위해 딸 지나미(유)는 자신의 가족이 부모님 집으로 들어오려 하지만, 부모님은 탐탁지 않다. 혹여 아들 료타가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료타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고, 고작 하룻밤 자는 동안에도 부모님과 마찰을 빚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부쩍 늙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지는데…

 

◇◆◇

 

(스포일러 주의! 영화 결말에 대한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는 가족의 삶을 한 조각 뚝 떼어내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과장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없다. 장남의 기일을 맞아 가족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1박 2일이 무심하게 흘러간다. 다만, 그 속에서 자칫 흘려 보낼 수 있는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침잠해있던 가족의 면면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영화 속 가족은 이렇다.

 

사별해 이미 아들이 있는 여자라고 며느리감을 폄하하던 어머니(키키 키린)는, 막상 며느리의 얼굴을 보고는 잘 대해준다. 그런데 실컷 인자하게 선심을 쓰는 순간에, 말 한마디로 며느리를 꼬집어 비튼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살린 아이가 청년이 될 때까지 매년 기일에 찾아오도록 만든다. 그리고 사람 좋은 얼굴로 대해서 보내고는, 아들에게는 그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기어코 더 부른다고 말한다. 내 아들은 죽었는데, 일년에 한번 그 정도 불편한 것이야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부모는 잃어버린 장남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 속에 매여 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에 멈춘 큰아들은 언제나 착한 아들이고 자랑스러운 아들인 반면에, 살아있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모습을 쭉 보아온 둘째 아들은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


 

아들 료타(아베 히로시)는 죽은 장남과 비교하는 부모가 싫어서 고작 일년에 한번 집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하찮게 생각하는 부모에게 기죽기 싫어, 자신의 처지를 사실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아들과 엄마는 함께 이야기하던 중에 누군가의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다가, 나중에 헤어지고야 생각이 난다. 그러나 전화를 걸거나 해서 이야기를 굳이 이어가려 하지 않는다.

 

아들은 늙어버린 부모가 안쓰럽지만, 막상 떠나오자 홀가분하다. 그리고 이번에 다녀가니 명절은 건너뛰고 내년에나 오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노부모는 아들 가족을 배웅하고 돌아서며 '몇 달 후 명절에 다시 오겠지', 하고 이야기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나쁘고,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삶의 상당 부분을 공유해야 하는 가족은, 사랑하는 만큼 밉고, 고마운 만큼 원망스럽고, 안쓰러운 만큼 짜증이 난다. 우리는 늘 그렇게 '가족'이라는 그 이름에 기대 오히려 더 날카롭게 상처를 주고, 늘 어딘가 어긋난다.


그래서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마지막 부분, 아들 료타는 이런 말을 한다.


"늘 이렇다니까. 꼭 한발씩 늦어."


영화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늘 딱 맞추지 못하는 가족 사이의 거리감. 약속을 해도 가족 사이의 일은 언제나 뒤로 밀리기 마련이고, 늘 곁에 있다는 생각에 제대로 봐주지 못한다. 마음만 먹으면 금새라도 발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속도를 맞추려 필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늘 늦게 된다.

 

하지만 영화 속 그 거리가 체념만은 아닌 듯하다. 엄마 유카리가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돌아가신 친아빠도 네 안에 있지만, 새 아빠가 된 료타도 앞으로 서서히 네 안에 차오르게 될 거라고... 그 말 속에는, 그렇더라도 오직 '가족'이기에 가능한 삶의 공유와, 그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모든 장면이 끝나고, 잠시 나와 가족의 거리를 재본다. 걸어도 걸어도 어쩌면 늘 그 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 몫의 삶이 있고, 그 속에서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이 다르고, 자연스레 향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다만, 같은 점에 서지 못해도 '걸어간다'는 그 행위를 멈추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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