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도서] 쥐 (MAUS)
: 유대인 대학살,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증언
/ 아트 슈피갤만 지음
만화책이다. 그러나 쉽게,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아니, 물론 그렇게 읽을 수도 있지만, 막상 읽다 보면 그럴 수 없게 된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저자이자 만화가인 아들 '아트'는, 유태인인 아버지 '블라덱'이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한 대학살(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과정을 만화로 그리려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그 이야기를 듣는다. 따라서 책 속에는 생존자인 블라덱과 그 아들 아트의 현재 삶에 관한 모습과, 아버지가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며 나타난다.
살아남은 자, 피의 증언
책은 원래 1, 2권으로 나뉘어 발간되었다가 합권으로 발행되었다. 1부는 '아버지에게 맺혀 있는 피의 역사', 2부는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 제목처럼 이야기는 처절한 전쟁의 참혹상을 드러낸다. 보통 만화라는 도구로 표현된 세계는 왠지 현실과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 참혹함을 한 꺼풀 덮어 표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물이 전쟁으로 겪어야 했던 끔찍함은 그 속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아버지 블라덱과 그의 어머니 안나는 히틀러가 점령한 유럽에서 참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남았다. 다른 모든 가족이 죽음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고, 돈을 주고 탈출하려다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정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기도 했다.
그리고 끝끝내 살아남았으나, 끝은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남은 자의 지독한 아픔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쥐와 고양이가 드러내는 인간
책 속에서 유태인은 쥐로, 독일인은 고양이로 그려진다. 가끔 등장하는 폴란드인은 돼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각각의 인물들은 인종에 따라 동물로 그려졌다. 단순히 유태인이 피해자이고 약자였다는 의미로 쥐고, 독일인이 그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쥐와 고양이의 이미지처럼, 작가는 유태인을 무조건 힘없고 선한 피해자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물론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것은 당연히 맞다. 그러나 그 유태인 아버지도 흑인을 향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하고, 간혹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고, 또 다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등의 행동을 한다.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어떤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동물화되어 나타나는 인물들은, 지극히 동물적인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평온한 상태에서 보이는 인격과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을 느끼게 한다.
◇◆◇
보통 역사 속에서 배우는 전쟁은 우리와 참 거리가 멀다. 몇 백, 몇 천명이 죽었네 해도, 그 수치가 직접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직접 겪은 삶을 통해 바라보는 전쟁은 참 다르다. 6.25한국전쟁만 해도 국사 시간에 배울 때는 무덤덤하다가, 우리의 할머니가 겪었고, 그 속에서 희생된 한 사람도 누군가의 사랑하는 이였음을 알게 되면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1992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코믹북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용어가 붙게 된 것도 이 책이 그 시작이라 한다. 가히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 평해지는 책이다. 그리고 그 많은 찬사에, 나 또한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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