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문학, 소설, 기타

사랑을 잃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스위벨 2013. 12.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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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

 

실연의 슬픔을 말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내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꿈꾸던 미래를 잃은 것 같기도 한 절망감일 것이다. 그럴 때는 아주 살짝,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책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다른 누군가의 삶은 그 아픔을 잠시 다독여 주기도 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나보다 더 많이 아프고, 더 절절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성숙한 결말을 이끌어 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얼핏, 지금의 아픔을 뚫고 지나갈 방법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현재 사랑을 잃어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 몇 권을 추천해 본다.

   

 

 ◇◆◇

   

 

1.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 전경린

 

사랑을 잃은 주인공 혜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자신이 떠났던 그곳,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을 자살시도까지 하게 만들었던 옛 남자가,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처절하게 나를 배신했던 사람, 그리하여 나를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게 만들었던 사람. 돌고 돌아 이제서야 겨우 돌아왔다고 생각한 혜규에게, 세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용서라는 두 글자를 강요하듯 내민다.

   

내가 결코 바라지 않았으나, 나에게 일어나버리고 만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그 가운데 선 혜규라는 주인공.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꾸역꾸역 버티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을 통해, 얼마간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돌고돌아... 언젠가는 우리 또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2. 깊은 슬픔 / 신경숙

 

세 명의 남녀가 주인공이다. 완, 은서, 세. 이들 세 인물의 관계는 참으로 진하고 깊고, 날카롭다. 그리하여 아프다.  '은서'라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선 남자 완과 세. 그들 세 명은 서로가 일렬로 선 채, 언제나 서로의 등만을 바라본다.

   

안타깝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받고, 아프다. 은서가 어느 한 곳을 향했을 때, 그 누군가가 그저 은서를 받아주기만 했더라면… 그랬으면 나머지 한 명의 상실감으로 끝났을 텐데, 세 명은 모두 늘 방향이 어긋난다.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건 기적이라 하지 않는가. 내 사랑이 아플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책을 꺼내 책장을 펼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위로를 받은 건, 마지막 순간에 은서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서다. 몇 구절만 옮겨본다.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묻는 이런 질문은 소용없단다. 시간이 지나면 형편없이 낯설어져 있거든. 나를 바라봤던 사람은 다른 곳을 보고, 나 또한 내가 바라봤던 사람을 버리고 다른 곳을 보고, 나를 보지 않던 사람은 나를 보지. 서로 등만 보지.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 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3. 사랑을 믿다 / 권여선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2008년 이상문학상 최우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무겁지 않고, 어렵지 않다. 오히려 가뿐함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미 남자에 대한 사랑을 접은 후였다.  그 여자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뒤늦게 사랑을 시작한 남자는 여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그 실연의 상황을 견뎌냈느냐고. 여자는 말한다. '약간의 기울이기'가 필요하다고.

 

물이 한 곳으로 고일 때, 그대로 들고 있으면 그 물은 무겁게 받아진다. 그 무게가 무겁게 쌓이도록. 하지만 약간만 다른 곳으로 각도를 틀어 기울인다면, 물은 금세 고이지 않고 흘러내린다. 쪼르르. 그녀는 사람의 생각에도, 이별의 아픔에도 이 기울이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연당했다는 그 상처 속으로만 파고드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아주 약간만 기울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어디 맘대로 된답디까, 하면서 나는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 겪게 된 이별을 통해, 나는 이 기울이기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나마 약간 기울여 보려고 노력하는 그 행위조차, 나에겐 꽤나 도움이 되었다. 상처를 줄곧 지켜보며 들쑤시는 것을 멈추자, 상처 위에는 얕게나마 딱지가 올라 앉았다.  그리하여, 언젠가 또 다시 그 어리석은 사랑을 믿어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4. 쥐 / 아트 슈피겔만

 

 

위의 책에서 말한 '기울이기' 와 같은 맥락에 있는 이야기다.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누군가의 예쁜 사랑은 아프기만 한 가시로 돌아올 것이다. 그럴 때는 누군가의 지극한 슬픔을 맛보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 비극을 통해, 내가 겪은 이 일은 그리 크지 않다는 자각, 그리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만화책이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그리고 있다. 만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자주 보던 심심풀이용 만화책이 아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 그 지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그 후에 남은 것들이 한 생존자 가족을 통해 보여진다. 그 과정을 보면 한 인간의 목숨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생각하는 한편,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생존자이 들려주는 피맺힌 이야기는 내가 가진 사랑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준다. 저 비극을 보라. 그들의 처절한 상처를 보라. 그들은 그 상황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책장을 덮은 후, 고개를 돌려 내가 가진 상처를 보면, 그것이 그리 최악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 동안만이라 해도. 

   

   

   

5.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얼마 전, 신간 소식에 수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밤새 줄 서고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전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소설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이 제목을 더 좋아한다.

 

제목처럼 하나하나 잃어가는 것, 상실에 대해 배우는 한 청년의 이야기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가 결국은 자살을 하고, 그를 둘러싼 상실감과 아픔 속에서 한 뼘쯤 더 자라나는 한 청년.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며, 결국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교 시절 처음 읽은 후로 이미 몇 번을 읽은 책이지만, 지금도 가끔 책장에서 책을 빼 들어 무작정 아무 페이지를 펴 들고 읽곤 한다.  누구나 무언가를 잃어가면서 산다. 꿈을, 사랑하는 이를, 그리고 내 현재를.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가는 것과 동시에, 다른 무언가를 얻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 책을 통해 작은 힌트나마 발견하고 싶다.

   

  ◇◆◇

   

사랑의 순간은 더 없이 황홀하지만, 남겨진 이별의 여운은 쓰디쓰다. 사랑을 잃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들을 통해서나마 작은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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