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문학, 소설, 기타

[책] 수요일의 편지 - 제이슨 F. 라이트

스위벨 2013. 12. 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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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간 한결 같았던 사랑,

그 사랑 뒤에 있었던 가슴 떨리는 비밀과 사연

 

 

나는 서간체(편지글)의 소설을 좋아한다. <키다리 아저씨>, <키다리 아저씨 그 후 이야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특히 좋아해서 여러 번 꺼내보던 책들이다. 어떤 사람이 쓴 편지를 읽는 다는 건 왠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직접 듣는 것처럼, 일반 서술보다 친밀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생활이며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다. 내가 모르는 먼 곳에서 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상당 부분도 편지글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서간체 소설처럼 완전히 서사가 편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편지가 이야기의 중간중간 등장한다. 하지만 편지는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소설의 주요 비밀을 담고 있는 갈등의 촉매제이자 해결의 열쇠로 작용한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B&B(여관)를 운영하고 있는 한 노부부가 하룻밤에 모두 세상을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평생을 함께산 그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이 아내와 남편이 같은 날에 함께 떠난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서로 사랑하고,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했던 그들이 떠났다. 그들의 부음을 듣고, 그들의 세 자녀가 부모님의 장례식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 첫째 아들 매튜. 그러나 매튜는 아내와 함께 오지 않는다. 매튜의 아내는 바쁜 일과, 아이를 입양하는 절차를 핑계로 시부모님의 장례식에 오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2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둘째 아들 말콤도 도착한다. 사랑했던 옛 연인을 괴롭히던 남자에게 폭행을 저지르고, 무작정 브라질로 떠났던 그였다. 그렇게 떠나고 무려 2년 만에야 부모님의 부음을 듣고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싱글 엄마인 막내 딸 사만다도 등장한다. 남편과는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고 있다. 연극 배우로 살고 싶은 것이 그녀의 꿈이지만 이런 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미루고, 경찰로 일하고 있다.

 

 

삼남매는 부모님이 남긴 물건을 정리하던 중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수천 통의 편지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읽어 나간다. 처음에 그 편지는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과,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요소였다. 그러나 하나씩 읽어 갈 수록 이 편지 속에는 세 남매가 상상조차 못했던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다.

 

부모님은 언젠가 때가 되면, 직접 자녀들과 대면하여 이 이야기를 나누려 했었다.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모님이 감추어둔 그 비밀은 편지에 의해 밝혀진다. 그래서 그 비밀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오로지 매튜와 사만타, 말콤, 3명에게 남겨졌다. 부모님에게 질문을 할 수도, 자신들의 당혹감을 위로받을 수도 없다. 때문에 처음 비밀을 접한 그들은 충격과 그로 인한 갈등으로 흔들린다. 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듯, 화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용서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한 인간에게서 시작된 이해와 용서는 넒고 넒은 파장을 만들어 내며 온 호수를 울리게 된다. 한 사람의 용서는, 예상치 못한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간다.

 

물론, 이런 류의 이야기가 흔히 그렇듯, 감동을 주려고 억지로 설치한 것처럼 보이는 작위적인 요소가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사실 결말도 '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게, 누가 봐도 뻔하게 끝맺음 된다. 하지만 뭐 어떠랴. 그 요소들을 모두 감안하고서라도 나는 충분히 감동을 받았고, 그러므로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무어라 말할까? 노부부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타인을 향한 배려와 용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남이 입힌 작은 상처 하나는 참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은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아이들.

세상의 불의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사람들.

사랑한다고 수 없이 말하면서도 그의 부족한 점은 포용할 수는 없다는 연인들.

쿨한 것, 무관심한 것, 냉정한 것이 곧 미덕인 시대.

 

그리고 그런 세태 속에서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소설이 사랑을 받는다는 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참 쉽게 수긍이 간다. 바깥 날씨가 매섭게 추울 수록 찻잔에 담긴 따스한 차 한 잔은 더욱 더 그리워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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