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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예 12년 - 인간의 존엄성, 물질로 대체될 수 있는가?

스위벨 2014. 3.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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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 인간의 존엄성, 물질로 대체될 수 있는가?

 

/ 스티브 맥퀸 감독

/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패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출연

(Chiwetel Ejiofor/ Michael Fassbender/ Benedict Cumberbatch)

 

 

 

    줄거리     

 

노예주와 자유주로 나뉘어져 있던 1840년대 미국.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음악가로서 인정을 받으며, 뉴욕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가장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솔로몬의 가족들은 잠시 집을 떠나게 된다. 그 사이 어떤 이들의 공연 제의를 받아 함께 워싱턴으로 떠난 솔로몬은, 그들의 계략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자유인임을 주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을 주장할 때마다 모진 채찍이 날아올 뿐이다. 결국 그는 한 사람에서 '노예'가 되어,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그리고 그는 사람 '솔로몬 노섭'이 아닌, 노예 '플랫'으로 12년을 살아가게 된다.

 

 

 

사회의 가치, 개인을 지배한다

 

솔로몬이 만난 주인은 총 2명이다. 처음 만난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 자였다.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노예를 사용하긴 하지만, 노예들에게 설교를 들려주거나, 음악가인 플랫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도록 해주기도 한다.

두 번째 주인은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 그는 광기 어린 악한 농장주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노예란 자신의 재산일 뿐이고, 따라서 자신의 기분에 따라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는 전혀 다른 타입의 두 주인을 비교해 보여준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고, 신실한 신앙인인 첫 번째 농장주 '포드'. 하지만 노예가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노예는 결국 노예일 뿐이다. 노예를 이용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꾸려가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그에게 그건 결코 '악한 행동'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노예들을 처리한다.

 

솔로몬이 주인이 준 바이올린을 부수는 장면은,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희망이 부서지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그래도 인간적인 주인이었기에, 혹시라도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그 또한 별다를 것 없는 자임을 깨닫는.

 

 

어떤 사회에도 악한 자들은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가진 관념이 정말로 무서운 건, 대부분의 선한 자들에게도 '당연하게' 그 생각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다. 인권이란 말이 생소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영화 속 노예의 모습은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그 시대에, 그곳에 태어난 백인이었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떠날 수 없는 자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은, 12년의 노예 생활에서 빠져 나온 후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다.

 

영화의 마지막, 캐나다에서 온 백인 목수 베스의 도움으로 드디어 농장을 빠져 나오는 순간. 솔로몬은 자신을 잡고 놓지 못하는 팻시의 팔을 빼내고, 자신을 데리러 온 지인의 마차에 오른다. 거기 그 악몽 같은 곳에 그녀를 두고. 그가 빠져 나온 그곳에 있는 여전히 많은 노예들이 있었다.

 

영화 끝에 명시했듯, 솔로몬은 납치되어 팔려간 흑인들 가운데, 자유를 찾을 수 있었던 극히 일부의 경우였다. 그리고 원래부터 자유를 몰랐던 수 많은 사람들이 '노예'란 이름으로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역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사회는 발전한다. 그리고 발전한 사회일수록, 인권과 생명에 그 무엇과도 교환될 수 없는 으뜸의 가치를 부여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권이 보장되고, 동물도 생명으로 인정받아, 일정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도 생겨났다.

 

단순히 영화 속 사회와 현재의 사회를 비교해 보면, 인류는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물질과 바꿀 수 없는 으뜸의 가치인 것이 맞을까? 단지 '노예' 라는 그 모습과 형식이, 사회적 변화에 맞도록 교묘하게 바뀌어 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50년, 혹은 100년 후의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보며, 이 영화를 본 우리처럼 경악을 할지 모르는 어떤 것들이, 우리가 별다른 의문 없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예제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그때의 모습처럼.

 

 

◇◆◇

 

인간이면서 인간일 수 없었던, 그의 12년 세월. 베시가 솔로몬을 위해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말을 하자, 길게 이어지던 솔로몬의 그 눈빛. 그 안에는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솔로몬이 떠난 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붙박은 듯 서 있던 팻시의 얼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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