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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너를 봤어 - 김려령 : 어둠 속에서 본 어떤 것들

스위벨 2014. 3.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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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너를 봤어 – 어둠 속에서 본 어떤 것들

/ 김려령 지음

 

 

 

인정받고 있는 중견 작가 수현, 겉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참 곱고, 고생 모르고 자란 느낌이다. 타인은 그렇게 그를 본다. 그러나 자신이 보는 수현은 다르다. 수현은 자신만이 아는 과거의 어두운 기억이 있다. 그리고 자신만이 내부에 있는 그것을 본다.

 

그런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너를 봤어."라고 말한 그 짧은 순간, 이미 강렬하게 그의 전부를 잠식하며 자리잡은 사랑이었다. 그녀는 후배 작가인 '영재'다. 영재는 참으로 거침없고, 그러면서도 따뜻하다.

 

그래서 수현은 그녀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자신이 개울가로 이끈 술 취한 폭력 아버지로부터,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 땠던 아내의 자살로부터, 어머니를 폭행하는 형의 시체를 버리고 온 그 저수지로부터.

 

하지만 수현은 알고 있다. 그들이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자신 또한 그들을 보고 있다는 걸. 그리고 영재 또한, 수현 속에 있는 무언가를 본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서운 무언가가 그의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수현 속에 도사린 그들은, 결국에는 영재를 다치게 만든다. 사랑하는 그녀를, 그래서 누구보다 지켜내고 싶었던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다.  

 

 

어둠 속으로 이끄는 끈질긴 손목

 

그의 죄가 아닌 것에서 시작된 비극은, 결국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고, 평생 지우지 못할 죄의식을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 질긴 손은 그로 하여금 다른 목숨까지 거두게 만들었다.

 

하지만 수현이 죽음으로 이끈 그의 아버지와 형은, 그와 어머니에게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폭력을 휘두른 인물이고, 그가 무관심으로 대응한 그의 아내는, 평생 모든 이에게 냉담함을 보여왔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이유는 될 수 없기에, 결국 그는 그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어찌하여 그의 생은 그리도 아팠는지, 그런 선택을 한 그를 상당 부분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하는 마음이 된다. 일평생을 개천에서 도망치려 용을 썼지만, 그를 도로 끌고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었던 징그러운 손목들. 어린 그가 취한 아버지를 끌고 간 개천, 아내가 자살한 욕실에서 오래 들려오던 물소리, 형을 던진 저수지. 흐르지 못하고 내내 고여있는, 물 밑에 존재하는 수현의 세상은 숨이 막히고, 어두우며, 역한 냄새를 풍긴다.

 

죽음은 그것으로부터 구해내려는 자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에게만 어려웠다. 아버지와 형, 내가 죽인 것일지 모르는 아내. 내가 바란 건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그를 위한 변명

 

그러나 수현의 세상이 늘 어두웠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사랑하는 영재와 동료 작가, 도하. 적어도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수현의 세상에도 잠시 빛이 비추었다. 그 시간 동안은 수현은 자신의 죄의식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인 영재. 그런 그녀지만, 소설 속 인물들을 참 많이도 죽이는 작가로 묘사된다. 그녀의 책을 거꾸로 들면,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다고. 그녀에게 왜 그렇게 죽이는지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죽인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니까요."

 

그건 어쩌면 수현의 아버지에게, 수현의 아내에게, 그리고 수현의 형에게, 결국엔 수현에게 하는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모든 걸 이해한다고 하기는 힘든 수현의 행동에 대한, 얼마간의 변명 같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수현이 죽인 걸까? 아니면 스스로 그런 인생을 살다가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 걸까? 그렇다면 수현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그 죄책감에 자신조차 죽여야 했던 그 남자는, 그를 끊임없이 진창으로 끌고 들어가려던 그들이 죽인 걸까, 그 스스로 죽은 걸까?

 

◇◆◇

 

    

 

[우아한 거짓말], [완득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김려령 작가의 소설이다. 그러나 이전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다. 이전 작품들에서 아픈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썼다면, 이번에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간결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문장, 무심한 듯 툭툭 던지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투는 지금까지 보아온 김려령의 느낌 그대로인데, 그 걸어가는 걸음마다 긴장감이 서렸다. 잘 벼린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햇빛에 반짝하고 빛날 것 같아 잠시 손을 대 보고 싶지만, 가까이 손을 가져가는 순간 깨닫는 서늘한 날카로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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