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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귀를 기울이면 - 콘도 요시후미 감독

스위벨 2014. 1. 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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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

/ 스튜디오 지브리, 콘도 요시후미 감독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지만,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란 이름은 조금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귀를 기울이면]이 콘도 요시후미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연출한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콘도 요시후미는 지브리 스튜디오에 입사해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의 작화 감독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다 [귀를 기울이면]으로 연출 감독으로 데뷔했으나, 꽤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래서 이 [귀를 기울이면]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남고 말았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

 

 

시즈쿠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중학생 소녀다. 여름 방학 중에는 늘 도서관에 가서 여러 종류의 책을 읽고, 친구가 부탁한 외국어 노래를 개사해 주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는 도서관에 가던 중,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를 따라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신비한 분위기의 골동품 가게를 발견한다.

그곳의 주인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된 시즈쿠는, 할아버지의 손자인 세이지와 점점 가까워지게 된다. 처음에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세이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즈쿠는 점점 그를 좋아하게 된다.

 

 

세이지에게는 굳건한 꿈이 있다. 바로 바이올린 장인이 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세이지는 이탈리아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같은 나이임에도 자신의 꿈을 향해 착착 걸어나가는 세이지를 보며, 시즈쿠도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한다. 시즈쿠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세이지 할아버지의 골동품 가게에 있는 고양이 인형 '바론 남작'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세이지가 공방 체험을 위해 잠시 이탈리아에 가 있는 동안, 자신도 그 소설을 완성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세이지가 점점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보며, 시즈쿠는 자꾸만 조급해진다. 그래서 괴롭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뇌 속에서 완성한 소설을 들고, 세이지의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설레는 첫사랑과 황홀한 꿈의 속삭임

 

이야기는 소년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임과 동시에, 한 소녀의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시즈쿠는 막연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지내는, 별다를 것 없는 중학생 소녀였다. 그런데 세이지를 만나고, 그가 가진 꿈에 대한 생각을 들으며, 시즈쿠도 자꾸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이지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와 발맞춰 나가고픈 마음이기도 했고, 시즈쿠 자신 안에 있던 꿈이 드디어 눈을 뜬 것이기도 했다.

 

 

세이지의 할아버지는 시즈쿠의 첫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말한다. '원석'이라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 빛나는 원석이라고 말이다. 사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누구나 '원석'이다. 어떻게 다듬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남았을 뿐, 저마다의 가능성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제 시즈쿠와 세이지는 그 원석을 들고, 한 발짝 걸어 나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서로의 꿈을 위한 길에서 힘이 되는 건,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한 '사랑'의 감정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마음은, 그렇게 서로를 일으키고, 서로에게 힘이 되며, 서로를 위한 길을 밝히게 된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 그 어딘가

 

애니메이션 곳곳에는 상당한 판타지가 포함되어 있다. 우선 고양이가 그렇다. 시즈쿠를 이끌 듯, 골동품가게로 데려가는 정체모를 고양이, 그리고 골동품가게에서 만난 고양이 인형 '바론 남작'. 고양이는 시즈쿠와 세이지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임과 동시에, 시즈쿠에게 길을 안내하는 존재이며, 시즈쿠의 첫 꿈을 함께하는 환상적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세이지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도 그렇다. 누군가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는, 세상 속에 어느 한 구석 자리잡은 환상의 공간인 것이다. 또한 꽤나 이른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아 차곡차곡 걸어나가는 세이지의 모습과, 그가 동경하는 '바이올린'이란 물건도 그렇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현실과 판타지가 함께 공존한다. 모든 판타지에서 말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마음'이다. 그 환상의 세계 속에서는 무언가에 대한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곤 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처음도 그 '마음'을 중요시 하면서 시작했다. 그러나 애니는 판타지에서 끝나지 않고, 그들을 현실에 발붙이게 했다.

처음 소설을 완성한 시즈쿠는 말한다. '마음'만으로 안 되는 걸 깨달았다고 말이다. 작은 소녀는 이제,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막대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이탈리아에서 잠시의 경험을 마치고 돌아온 세이지도 마찬가지다.

 

 

원석은 누군가 가지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연마하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단지 원석을 가지고 있다고 그 원석이 보석이 될 수는 없다. 꿈을 꾸는 건 환상이지만, 그걸 이루어 가는 과정은 현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장을 시작하는 그들은, 꿈을 바탕으로 강한 현실 위에 서야 한다.

 

 

 

컨트리 로드, 길 위에 서서…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시즈쿠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컨트리 로드(Country Road)'란 영어 곡을 세이지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추어 자신이 바꾼 가사로 부르는 모습. 그리고 거기에 할아버지들의 연주가 더해져 음악은 더욱더 흥겨워진다.

 

 

시즈쿠가 바꾼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지 않아." 그리고 노래 중에는 꿋꿋이 걸어나가겠다는 내용과 각오가 들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 컨트리 로드가, 시즈쿠가 걸어나가는 길을 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성장을 시작해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즈쿠를 상징하는 노래는 아닐까, 하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이미 지나온 그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리웠고, 아쉬웠다. 그리고 나는 길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과거가 그리워도, 돌아가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다. 힘들더라도 앞으로 걸어 나가는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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