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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하루 - 사랑을 잃고, 심장을 잊다

스위벨 2014. 1. 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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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하루 (hal) – 사랑을 잃고, 심장을 잊다

/ WIT STUDIO 제작, 마키하라 료타로 감독

 

 

사랑하는 '하루'가 죽었다. 연인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쿠루미'는 좁고 어두운 공간에 틀어박혀, 먹지도, 자지도, 웃지도 않는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삶의 끈을 이어주고자, 로봇Q1(큐이치)을 찾아와 부탁한다. 대신 하루가 되어달라고, 그래서 그녀를 치유해 달라고 말이다.

 

가까운 미래인 2030년에는 로봇이 일상적이다.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하기도 하고, 케어 센터에서 누군가의 치료를 위해 활동하기도 한다. 로봇 Q1도, 쿠루미를 돕기 위해 '하루'의 모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간다.

 

 

 

하지만 쿠루미는 하루의 모습을 한 로봇 따위는 필요 없다며, 로봇 하루의 도움을 뿌리친다. 그럼에도 로봇 하루는 그녀의 곁을 지키며 그녀를 위한 일을 하나씩 찾아낸다.

쿠루미는 하루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큐브에 써 놓곤 했었다. 하지만 하루의 죽음으로, 그녀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로봇 하루는 그 큐브를 하나씩 맞추어 가며, 그녀가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하루가 미처 해주지 못한 그 일들을 '쿠루미'를 위해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하루의 마음이 통했는지, 쿠루미도 조금씩 밖으로 나와 하루의 성의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로봇 하루는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죽은 하루의 친구인 '료'였다. 하루와 료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다.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에 착취당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로봇이 존재하는 미래이지만, 로봇은 비싸고, 돈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일부 어두운 일까지 함께 했던 하루와 료. 그러나 '료'는 하루가 죽은 걸 몰랐는지 로봇 하루를 하루로 착각하고 이상한 말을 건넨다.

 

쿠루미와 함께 축제에 다녀오는 길, 다시금 그들 앞에 '료'가 나타나고, '료'는 돈이 필요하다면서 '쿠루미'에게 위협을 가하려 한다. 하루는 쿠루미와 함께 도망치지만, '료'와 그 일행은 그들을 쫓는다. 그리고 그 위험 속에서 '하루'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심장을 얻다

 

쿠루미는 작은 물건, 헌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버려진 물건을 소중이 아껴 두었다가 다른 물건으로 재탄생시키곤 한다. 낡고 보잘것없던 물건들은 그렇게 쿠루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쿠루미가 계속해서 만지고 다듬던 단추 하나가 있다. 원래 하루의 것으로, 쿠루미는 그것을 하루의 심장으로 여겼다. 하루가 죽고 쭉 골방에서 그것만 들여다 보며 지내던 쿠루미는, 축제에 가기 전, 로봇 하루의 가슴에 그 단추를 달아 준다. 심장은 그렇게 하루의 가슴 위에 다시 자리를 잡는다.

로봇에게는 심장이 없다. 쿠루미는 그런 로봇 하루의 가슴에 심장을 달아 준다. 이 장면은 쿠루미가 아픔과 갈등을 이겨내는 하나의 치유 과정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결말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과거와 미래의 공존, 그리고 현재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2030년의 교토다. 일본의 교토 지방은 전통의 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애니메이션 곳곳에서는 전통적 일본의 모습이 많이 베어 나온다. 쿠루미가 사는 집과 동네, 강변 마을, 그리고 일본의 전통 축제까지. 그 모습 속에 '로봇'이라는 전혀 색다른 미래의 배경이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당히 새롭다.

 

 

시간은 분명 미래이건만, 보여지는 모습은 일본의 과거다. 그런데 거기에 고도의 과학 기술인 안드로이드 로봇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얼핏 그런 배경은 현재 모습과 가까이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전통과 일상의 모습 속에 등장한 미래의 일부 장면은 더 큰 이질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이 과학으로 치장된 미래의 환상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것보다,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속에는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현재도 함께 존재한다. 쿠루미의 동네는 과거를 연상시키고, 하루가 거니는 길가는 현재의 모습이며, 로봇이라는 존재는 미래의 상징이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은 과거이기도 하고, 미래이기도 하며, 동시에 현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상실에 대한 아픔과, 누군가를 위한 사랑은 그렇게 온 시간을 아우르는, 영원의 이야기이다.

 

 

 

서로에게 건네는 치유

 

 

하루가 죽고, 쿠루미는 그에게 못한 말을 로봇 하루에게 대신한다. 그의 아픔을 더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이 말은 쿠루미의 후회와 아쉬움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쿠루미 그녀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더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은, 결국 죽은 하루를 위한 말이었다. 자신이 더 받아들이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러니 하루 너는 나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쿠루미를 위해 하루가 행했던 모든 일은, 사실 쿠루미가 아니라 하루를 위한 과정들이었다는 걸 말이다.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나면, 뒤늦게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담긴 이유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와 의도를 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쿵, 하고 심장 언저리에 무언가 와서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포스터에 적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인간이 되었다"는 하루의 말이 참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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