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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로라 공주 : 오로라에게 명분을!

스위벨 2013. 11. 2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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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로라 공주 : 오로라에게 명분을!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세상에 얼마나 막장 같은 얼토당토 않은 상황이 많은데. 하물며 드라마니, 그 모든 막장 상황의 버무림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보고 또 보고]에서 엄마의 말도 안 되는 편애도, 겹사돈이라는 상황도, 지독한 시어머니의 미움도.

[인어아가씨]에 나왔던 자신을 버린 아빠에게 복수하기 위해 배다른 동생의 남자를 빼앗는 상황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합심하여 벌이는 시집살이도, 김치 껍질을 벗겨 두 시간을 푹푹 끓여야 한다는 그 기괴한 김치찌개도.

[하늘이시여]에서 벌어졌던 친딸과 양아들의 결혼도, 기억상실증도, 실어증도.

 

그래서 이전 임작가의 작품들은 욕을 충분히 먹으면서도 막강한 시청률을 자랑했고, 작가는 그만한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런 임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막장이라 해도, 그만큼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했으므로.)

이전 작품들에서 시청자들이 그 상황들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길 수 있었던 건, 최소한 주인공에게만큼은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만큼은 시청자에게 미움 받지 않았고, 그가 처한 상황을 시청자는 함께 안타까워했기에 막장 상황에서도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남자 주인공이 지질해 보이기 시작하면서, 작가는 설설희 라는 대체 인물을 투입했다. 지질한 남자 주인공대신, 설설희에 열광한 아줌마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드라마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역시 원래 남자 주인공이 황마마였다는 틀을 도저히 벗어날 수는 없었는지, 작가는 오로라가 설설희 대신 황마마를 택하도록 하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작가는 그다지 시청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지질하게 매달리다가, 마마가 중이 되겠다고 집을 나가자, 어쩔 수 없이 누나들이 허락을 하고, 오로라가 마음을 돌려 먹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왜???? 오로라, 정신 차려!!

 

어쨌든 둘은 결혼을 했고, 어차피 시집살이와 갈등은 말 안 해도 펼쳐질 제 2막이 분명했다. 임작가의 이전 작들은 모두, 1막은 결혼에 이르는 과정, 제 2막은 바로 그 시집살이였으니까.

그러나 졸렬하고 치사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누이들과 눈치는 일찌감치 밥 말아 먹은 황마마 사이에서, 똑똑하던 오로라도 어느 순간 같이 멍청해 지는 것만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하늘이시여의 윤정희처럼 아예 순둥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어아가씨의 장서희처럼 똑순이도 아닌, 그 언저리 어디쯤을 갈팡질팡 하며 방황했다.

 

그러더니, 그것도 별 힘을 못 쓰는 걸 느꼈는지 이제 작가는 '아픈 옛 사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설설희가 중병에 걸렸음이 드러나면서 오로라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가고, 오로라 또한 고된 시집살이를 못 이겨 점점 설설희를 그리워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청자들은 벙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왜? "사랑이 아니라며, 진정한 사랑은 황마마라며 떠난 오로라가 왜 이제 와서 설설희를 그리워하나?" 이쪽에서 못살겠으니 저쪽을 버린 것이 아쉬운 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남자 주인공인 황마마도, 여자 주인공인 오로라도 명분을 잃은 지 오래다. 그 둘이 그리 절절한 사랑을 했는지조차도 시청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그에 더해, 오로라가 설설희에게로 되돌아 갈 명분조차 오로라에겐 없다. 이제 와서 오로라가 설설희에게 되돌아 간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나쁜 년, 멍청한 년' 정도로 치부되고 말리라. (오로지 명분이 있는 건, 암환자로 변신한 설설희의 순애보뿐이다.)

 

이렇게 된다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라기 보다는 '욕하려고 보는 드라마'가 되지 않으려는지 걱정된다. 주인공에게 명분을 주고 싶다. 오로라에게 충분한 명분을 주시라. 그리하여, 그 속에서 시청자들을 설득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더 이상 오로라를 미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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