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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 런치 박스 - 외로운 마음에 배달된 따뜻한 도시락

스위벨 2014. 5. 5.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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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런치 박스

(Dabba, The Lunchbox)

: 외로운 마음에 배달된 따뜻한 도시락

 

/ 리테쉬 바트라 감독

/ 이르판 칸, 님랏 카우르 출연

 

 

    줄거리    

 

인도에서는 '다바왈라'라고 불리는 도시락 배달부가 가정에서 직장까지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 주부인 '일라'는 남편을 위해 잔뜩 정성을 쏟아 만든 도시락을 배달부에게 맡긴다.

그런데 그 도시락은 엉뚱한 곳으로 배달되고, 도시락을 받은 이는 '사잔'이다. 조기정년퇴임을 신청해 두고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다. 그는 잘못 배달된 줄 모르고 일라의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깨끗이 싹싹 비운다.

 

 

그날 오후, 배달부로부터 깨끗이 비워진 도시락을 받아 든 일라는 기뻐하지만, 저녁 때 퇴근 해 돌아온 남편은 어쩐지 심드렁한 반응이다. 맛있었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보내지 않은 다른 음식을 말하는 남편을 보고, 일라는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도시락 배달부에게 말하는 대신, 다시 한번 도시락을 싸서 그 안에 쪽지를 집어 넣는다. 남편을 위해 싼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었다고. 그런데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나 오후에 돌아온 도시락 통 안에 들은 답장에는 '오늘은 음식이 좀 짰다'는 말 뿐이다.

 

다음 날, 약이 오른 일라는 일부러 매운 고추를 가득 넣어 음식을 만들어 보내고, 사잔은 '맛은 있었지만 매웠다'고 답장을 써 넣는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쪽지. 무덤덤한 말 몇 마디에서 시작된 그들의 쪽지는, 곧 일상에 대한 말이 담기며 편지가 되고, 점점 더 길어지며 결국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

 

 

 

외로운 마음을 녹인 따뜻한 도시락

 

 

일라에게는 남편이 있고, 딸 아이가 있다. 그런데 퇴근해 돌아온 남편은 일라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일라는 차가운 남편에게 자꾸 손을 뻗어보려 노력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에게 무관심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라는 남편이 외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숨막히고 건조하기만 한 나날 속에서도, 일라는 남편과 달리 자신의 음식을 좋아하고, 또 맛있게 싹싹 비워주는 사잔에게서 작은 위로를 느낀다. 그리고 남편이 들어주지 않는 일라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에 관해 자신의 이야기로 답해주는 사잔의 편지가 기다려 진다.

 

 

사잔은 혼자다. 아내가 죽고, 그 빈자리에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더 사람을 멀리 내치기만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베란다에 서서 다른 집 저녁 식탁을 바라 본다.

그런 그의 배고픔을 일라의 도시락이 채워주기 시작했다. 일라의 요리는 무척 맛있고, 그 무엇보다 온기가 가득하다. 사잔은 그녀의 도시락을 시작으로 일라와 소통을 시작하고, 곧 이어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만들어 나간다.

 

편지가 담긴 도시락은,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외롭고 건조했던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데워주기 시작했다.

 

 

기차는 결국 어디로 향했을까?

 

외로운 사람들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일라와 사잔은 단순히 편지를 주고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서히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남편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읽어주는 사잔에게 일라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은 사잔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끝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영화 속 그들은 제대로 얼굴 한번 대면해 보지 못한 채 끝을 맞이한다. 상당히 많은 것을 여백으로 남겨두었고, 관객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는 꽤나 좋은, 그리고 바람직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남편에게 상처받은 젊은 주부와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남성이다. 게다가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그저 편지를 통해서만 쌓은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이 사랑이라고도,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이어지는 해피 엔딩으로 만들자니 현실을 무시한 낙관적인 동화 같고, 그저 그렇게 끝나버렸다 하기에는 냉정하고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는 그 끝을 관객 각자의 몫으로 돌리면서, 일라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남긴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대요. 두고 봐야죠."

 

◇◆◇

 

인도 영화다. 영화에서는 내내 인도의 모습이 담기면서, 인도 특유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많다. 담담한 듯 그려지는 사잔과 일라의 모습도 좋았다.

 

 

영화 속에서는 아주 여러 번 이 말이 나온다.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 준다."

처음에는 단지 도시락은 잘못 배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잘못 배달된 도시락이 서로의 진심을 담은 소통으로 이어졌다.

 

때때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라의 말처럼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우리가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달할지, 아니면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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