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면 속의 망상/영화 보기

작은 두 손에 얹힌 비극 :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스위벨 2013. 12. 3. 13:03
반응형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 작은 두 손에 얹힌 비극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으로 꼽을 수 있는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사실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는 일부러 피하고 잘 안 보게 된다. 그런 영화들은 하나같이 잔인하고, 끔찍하고, 슬프고, 어둠 속으로 걸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보고 나서의 후유증이 오래 가기도 한다. 허나 그럴 수 밖에 없다. 실제 벌어진 그 사건 자체가 끔찍하고, 잔혹하고, 그리고 잔인한 어둠이었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말 그대로 먹먹함이었다.

   

   

   

잔인한 폭력과 순수함의 대비

   

이 영화에서도 나치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건, 순수한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 두 소년이다. 한 아이는 독일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수용소 근처로 이사를 온 브루노.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유태인 소년 슈무엘.

갑작스런 이사로 친구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를 온 브루노는 수용소 철책을 사이에 두고 슈무엘을 만나게 된다.

   

 

   

브루노는 궁금하다. 슈무엘이 왜 그곳에 사는지, 왜 낮에도 항상 파자마를 입고 있는지, 머리는 왜 박박 밀었는지. 그리고 슈무엘과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늘 언제나, 철창이 있다.

   

   

   

약간의 비겁함이 불러온 거대한 폭력

   

독일 히틀러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두고,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한결같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작, 사상이 이상한 독재자 하나가, 역사상 다시 없을 그런 거대한 비극을 불러온 것일까?

   

   

어느 날, 슈무엘은 독일 군인의 집에 일손을 돕는 인력으로 차출된다. 그리고 그 집은 바로 브루노의 집이었다. 두 소년이 처음으로, 철창을 사이에 두지 않고 만난 것이다.  

온갖 음식을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는 슈무엘에게 브루노는 음식을 먹으라고 말해준다. 집주인 아들인 브루노가 먹으라고 하니, 슈무엘은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 먹는다. 수용소에서는 늘 배가 고팠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아버지의 부하 군관이 들어와 슈무엘이 음식을 집어 먹은 걸 알게 된다.

겁에 질린 슈무엘은 브루노가 먹어도 된다고 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평소 차갑고 섬뜩한 아버지의 부하는 브루노에게 묻는다. 정말 그렇게 말했느냐고. 그의 닥달에 브루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결국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런 적이 없다고.

사실 솔직히 말했어도 브루노는 엄연히 상관의 아들이니 고작 말 몇 마디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브루노는 혹시나 혼날까 하는 두려움에 결국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슈무엘은 끔찍하게 구타를 당한다. 단지 한 아이가 혹시 혼날까 하는 마음에 고개를 살짝 저은 일로 인해서 말이다.

   

사실 역사가 가진 그 큰 비극도 이런 작은 비겁함에서 시작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와 나치의 동조자들이 약간의 비겁함으로 그들의 사상을 긍정하고, 또 다른 무리들이 또 약간의 비겁함으로 잘못되었다 말하지 못한 채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그리고 무리가 커지고, 더욱 커지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중에는 그 생각 안에 갇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무서운 권력자 앞에서 단지 고개를 젓는 사소한 비겁함을 가졌을 뿐인데, 결과는 처참하다.

   

   

   

비극으로 치닫는 아이들의 순수함

   

브루노는 슈무엘을 찾아가 용서를 빈다.  자신의 비겁함과 잘못을. 그리고 슈무엘은 별다른 타박 없이 그런 브루노를 또 용서해 준다. 이는 순수한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브루노는 자기가 잘못한 일에 대해 솔직히 용서를 빌었고, 슈무엘은 자기가 당한 일에도 불구하고 브루노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그리고 브루노는 사과의 의미로 슈무엘의 아버지를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슈무엘의 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수용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친구의 고민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며칠 후 슈무엘이 브루노의 파자마를 준비해 놓으면, 브루노가 철창 밑에 구멍을 파서 함께 수용소로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그렇게 둘이 찾으면 훨씬 쉽게 찾을 수 있지 않겠냐는, 다른 것은 계산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 순수함과 우정은, 어른들이 쳐 놓은 잔인한 세상 속에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순수함을 지켜줄 수 없는 세상은, 정의로운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약간의 비겁함으로 악의를 받아들인 어른들에게로 되돌아온다.

보고 나서 한참이나 마음이 일으켜 세워지지가 않았다. 눈물이 밖으로 나오는 슬픔이 아니라, 오히려 입이 다물어졌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꼭 맞잡은 두 아이의 손이 클로즈업 되어 나온다. 이 작은 두 손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잊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