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슬로우라이프 무비)
/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이치카와 미카코 주연
공허한가요? 외로우세요?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
키워주신 할머니가 죽고, 혼자 사는 집에는 고양이가 가득이다. 사요코는 리어카에 고양이들을 싣고,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렌타~ 네코! 네코, 네코!"
"고양이~ 빌려줘요! 냥이, 냥이!"
비록 꼬맹이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마치 마녀라도 본 양, "고양이 할멈이다!" 라고 외치며 도망가지만, 그래도 사요코는 오늘도 강변에서 리어카를 끈다.
마음 속의 구멍을 채우는 방법
"외로우신가요? 고양이를 빌려 드립니다" 라는 사요코의 목소리에 외로운 누군가가 다가온다. 혼자 사는 할머니와, 기러기 아빠, 그리고 좁은 렌터카 샵에 갇혀 단조롭게 살아가는 아가씨가 그들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외로움은 "구멍"으로 대변된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뚫린 "구멍"은 실제의 "구멍"으로 시각화하여 드러내 진다.
할머니가 젤리 중앙을 파낸 후에 남은 움푹한 구멍, 아저씨가 신은 구멍난 양말, 아가씨가 먹는 도너츠의 구멍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에게 사요코는 고양이를 빌려준다. 그리고 고양이를 빌려간 사람들의 구멍은 어느새 스르르 메워진다. 할머니 젤리 속의 구멍에는 하얀 크림이 채워졌고, 아저씨의 양말은 빨간 실로 꿰매어졌다. 그리고 렌탈샵의 아가씨는 처음으로 그 좁다란 사무실을 벗어나, 하와이로 떠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고양이들은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의 곁에서 마음을 쓰다듬고, 친구가 되고, 그들이 다른 곳을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모든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리어카를 끌고 강변을 지나던 사요코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중학교 동창생이었다.
별로 반가운 사이가 아닌지, 모르는 척 지나가려는데 그가 이야기한다. 내일 인도로 떠나는데,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야.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사요코. 그러나 그녀는 곧 이렇게 쏘아붙인다.
"거짓말 허풍쟁이, 요시자와!"
중학교 때부터 거짓말 허풍쟁이로 유명한 요시자와에게, 사요코는 고양이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고 보니, 어느덧 요시자와가 떡 하니 따라와 있다. 결국 티격태격하던 둘은 마루에 걸터앉아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요시자와는 '도둑'이라 답한다. 사요코는 '아~ 또 허풍이군, 허풍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웃어 넘긴다.
그날 밤, 사요코의 집에 형사들이 찾아와서는 떡 하니 요시자와의 사진을 내민다. 상습 절도범을 그 동네에서 보았다는 제보가 있었다면서. 거짓말쟁이의 허풍으로만 들었던 그의 대답, '도둑'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로 떠나야 해서 오늘밤이 마지막이라던 그 말도 그냥 거짓이기만 했을까?
채울 수 없는 외로움
요시자와의 일이 있고 난 후에, 사요코는 죽은 할머니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다.
"할머니, 고양이의 부드러운 마음으로도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있는 건가요?"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단연, "Yes!"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진정 외로운 사람은 바로 사요코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요코는 혼자 남았다. 물론 고양이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사요코는 집안에서 할머니의 영정에 매일 인사를 하고, 할머니와 대화를 한다. 고양이를 빌려주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만, 그 외에 그녀 곁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더운 여름날에는 마당에서 거창한 대나무 소면을 설치해 놓고 혼자 먹는다. 그리고 가끔은 고양이를 붙들고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고양이들은 사요코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는다.
우울한 마음에 마당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옆집 아줌마가 사요코에게 다가온다. 틈만 나면 사요코를 찾아와서 전생에 매미였을 거라느니, 키가 큰 여자는 인기가 없다느니, 가슴이 절벽이라느니 하면서 염장을 지르고 가는, 밉상스러운 아줌마다. (사실 아저씨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아저씨 같다.)
그런데 이날은 마당에 앉아 있는 사요코를 보고는 갑자기 이런 말을 건넨다.
"그렇게 참지 말고, 가끔은 울어."
그 말 한마디에 사요코는 또 금새 울기 시작한다. 그런 사요코의 모습을 보고 옆집 아줌마는 '참 못생겼다'라고 말하면서도, 삶은 감자를 하나 던져준다. 소금이라도 찍어서 먹으라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사요코의 무너져버린 마음을 일으켜 세워 준 것은 고양이었다. 그랬기에 사요코는 외로운 누군가에게 고양이를 빌려줌으로써, 그 외로움을 어루만져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채우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요시자와의 마음도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요코의 잘못도, 고양이의 부족함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저마다의 '구멍'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 구멍에 딱 맞는 조각은 없다. 우리는 그저 그 구멍을 때때로 이런저런 것들로 채워나가려고 노력하면서,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구멍의 일부는 고양이로 채워졌다가도, 어느 날 불어온 바람에 다시 뻥 뚫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졌다가, 또 어느 날은 밉상 아줌마가 던져주는 삶은 감자 한 알로 채워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이 아닐까?
구멍을 온전히 메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마음의 구멍을 인정하면서, 이런저런 것들로 최대한 채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삶'인 거라고 말이다.
오늘도 사요코는 고양이 리어카를 끌고 강변으로 나선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그를 통해 자신의 마음 속에 생긴 구멍을 채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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