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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토리 자매 - 외로운 사람들의 비밀 친구 / 요시모토 바나나

스위벨 2014. 5.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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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토리 자매 - 요시모토 바나나

외로운 사람들의 비밀 친구 "도토리 자매"

 

 

우리는 도토리 자매입니다.

이 홈페이지 안에만 존재하는 자매죠.

별거 아닌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일, 없으세요?

언제든 우리에게 메일 주세요. 어떤 내용이든 괜찮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은 꼭 보내겠습니다.

 

자매인 돈코구리코는 '도토리 자매'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라는 컨셉이다.

 

자매의 이름인 돈코와 구리코를 합치면 '돈구리' 일본어로 '도토리' 라는 뜻이 된다. 두 자매는 확연히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활동적이고 연애 그 자체를 사랑하는 언니 '돈코', 내향적이고 자신의 내부에 머무를 때가 많은 동생 '구리코'. 하지만 두 이름이 합쳐져 '도토리'라는 하나의 뜻이 만들어 지듯, 자매는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한 집에서 살아가고, 함께 힘을 모아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연지 어느덧 1년. 언니인 돈코가 새로 생긴 연인과 여행을 떠난 사이, 동생 구리코는 자신이 어려웠을 시기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첫사랑 '무기'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도토리 자매의 홈페이지는 굳이 무언가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니다. 책 안에서는 '두서 없는 이야기를 두서 없이 나누고 싶은 데 말할 상대가 없을 때'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낸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이가 되어주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향하는 가장 절실하고 따뜻한 손길일지도 모르겠다. 지식을 알려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해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내 이야기를 주절주절 나누고플 때,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 사연을 누군가가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순간, 두서 없었던 그것들은 누군가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되고, 마음이 되고,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항구에는 조그만 배들이 수없이 정박해 있었다. 어물전 아저씨는 퉁명스러웠지만 쉴 새 없이 생선을 권하고, 또 팔고, 오늘 하루가 나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게 다 여기 있구나.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도토리 자매, 돈코와 구리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도토리 자매. 하지만 돈코와 구리코의 삶 또한 평탄치 않았다. 자매에게 소박하고도 귀여운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은, 자매가 어렸을 때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후 친척집에서 자라야 했는데, 마지막에 자신들을 거둬주었던 이모네 집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을 겪으며 안 좋게 나오게 되었다. 그 후에 자매는 아픈 할아버지를 간병하면서 그 집에서 살았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둘만 남았다.

 

돈코와 구리코는 여전히 고민하고, 아프고, 간혹 슬프기도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자신들 속으로 침잠할 때도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사랑 때문일 수도 있고, 과거의 상처, 혹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떠난 첫사랑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렇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그 '사소한 이야기', 그 작은 '소통'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고 있다. 아는 이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 혹은 털어놓을 이들이 없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도토리자매는 자신들의 귀를 열어놓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위안을 받는 건, 메일을 보낸 누군가 만은 아니다. 그 마음을 듣고 답장을 전하는 도토리 자매도, 그 속에서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한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지극히 '요시모토 바나나'다운, '요시모토 바나나' 스타일의 이야기다. 그만큼 작가의 전작들과도 상당히 많이 닮아있고, 익숙하다.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는 다소 신선하게 느껴지는 소재이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도토리 자매의 홈페이지는 조연과 같은 역할이다. 소설은 주로 구리코와 돈코의 하루하루를 따라간다.

 

그리고 책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소 애매하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지극히 사소하고, 무언가 기승전결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주요한 갈등이 전면에 부각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건 마치 도토리자매에게 보내는 메일들처럼, 다소 두서 없고 별 것 아닌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역시 그 차분함 속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따스함이 있다.

 

도토리 자매들 또한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녀들의 미래 또한 불안하다. 하지만 그녀들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전하려는 의지와 마음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지금 주어진 삶을 그렇게 살아 나가는 것, 대단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매 순간 착실하게 숨을 쉬는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즐거우니까 살아가자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다만 몸이, 본능이 살아가자고 하니까, 오직 살아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저녁에 따스한 공가에 푸근히 잠겨 있으면, 쾌감을 느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처럼. 쾌감과 볼쾌감이 다가왔다가는 사라진다. 집에 틀어 박히는 시기가 있고 그다음에는 밖으로 나가고 싶은 시기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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