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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여진구 주연 영화 원작 소설)

스위벨 2014. 5. 1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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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 심장을 쏴라 

– 정유정 지음


(영화 '내 심장을 쏴라' 원작 소설 / 여진구, 이민기 주연)

 

 

    줄거리    

 

비가 내렸고, 그는 길을 잃었다.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길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25세 남자인 이수명은 후줄근한 추리닝을 입고 있었고, 부스스한 머리는 치렁치렁 길었고, 말은 더듬었다. 

여자는 자기에게 다가선 남자에게 놀라 도망가려 했고, 수명은 얼떨결에 여자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수명은 성추행범이 되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수명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경찰은 물론이요, 아버지까지 그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정신병원에 갇혔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성격인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평생 나오지 못하게 될 터였다. 수리 희망병원에서.

 

입원하던 그날, 수명은 한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류승민'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수명은, 승민이 만들어내는 각종 사건 사고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숨으려는 이수명 vs. 나가려는 류승민

 

수명은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어렸을 때 엄마의 죽음을 본 충격이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정신분열증은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퇴원했지만, 다시 병원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져도, 수명은 자신을 변명하거나 보호하지 않았고, 그냥 포기했다. 무기력하게 병원으로 끌려왔고, 와서도 나가겠다거나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없다. 아버지가 평생 정신병원에 있으라면, 그냥 있을 생각이다.

 

그런데 그날, 자신과 동시에 입원한 동갑내기 승민을 만났다. 그는 정신병이 아니라, 유산 상속에 말려 정신병원에 가두어진 사람이었다.

승민은 날개를 펴고 하늘과 산을 누비던 패러글라이딩 선수였다. 승민은 수명과는 달리 자신의 날개를 펼쳐 본 사람이었다. 좌절도 겪었으나,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맛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 실패 끝에 잔인한 대가를 치르게 되더라도, 그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그 장소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정신병원, 그리고 또 하나의 정신병원?

 

이 소설 안에는 크게 두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병자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외부 사람들. 정신병원의 의료진과 직원, 환자의 보호자들.

 

처음 묘사되는 정신병원 환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긴 머리의 수명을 자신의 딸로 여기고 달려드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복도를 질주하는 경보 선수도 있고, 조증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쉼 없이 떠벌리는 남자가 있고, 자신을 공주라 여기는 여자가 있고, 어떤 사람을 자신이 타던 말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해진다. 어느 순간이 되면, 서서히 정신병원 안의 사람들은 말짱해 보이고, 오히려 그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는, 이미지의 전복이 일어난다.

 

환자 외부에 존재하며 그들을 관리하고 다루는 이른바 정상인들. 그들 중에는 환자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즐거움을 얻는 직원이 있고, 관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말 안 듣는 환자에게 무차별 약물을 투약하는 의사가 있고, 환자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원장이 있고, 젊은 여자 환자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른 여러 명의 보호사들이 있다. 그리고 유산을 빼앗기 위해 이복 동생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람도 있다.

 

과연, 정신병원을 둘러싼 인물들 가운데, 정말로 치료가 필요한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내 심장을 쏴라!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승민은 어느 날, 수명에게 이런 말을 한다. 늘 자기 인생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듯한 모습의 수명에게. 이 물음은 수명에게 성큼 다가와 마음에 박히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승민의 그 갈망과 열정에 물들어, 수명 또한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승민에게 허락된 마지막 순간, 승민은 오롯이 자신인 채로 남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고 하늘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낱낱이 지켜본 수명도, 자신의 삶을 정식으로 대면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수명은 여전히 두렵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두려움이 파닥거린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활공장 앞에 섰다. 내리막이 보여도, 절벽이 보여도 도망가서는 안 된다. 그저 하늘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하늘을 날 수 있다.

 

"넌 누구냐?" 승민이 물었다.

나는 팔을 벌렸다. 총구를 향해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촬영 중이라고 한다. 여진구가 이수명, 이민기가 류승민 역을 맡았다고.(사진 속 이민기가 차고 있는 시계가, 아마 소설 속에서 첫 문제를 일으키는 그 시계가 아닐런지. ^^)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내 심장을 쏴라. 내 심장을 내어줄 각오로, 삶 안으로 돌진해본 일이 있었던가. 소설 속에서 수명을 향해 던진 승민의 날카로운 물음이, 내내 내게 하는 말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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