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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 치매 어머니와의 시간, 따뜻한 만화로!

스위벨 2014. 4. 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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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 오카노 유이치 글, 그림

 

 

 

만화책이다. 요즘 많이 쓰이는 용어로는 '그래픽 노블'되겠다. 그러나 책이 전부 만화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만화에 간간이 글이 섞여 있는 구조다.

 

환갑이 넘은 작가 '오카노 유이치'가 치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그러나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다. 오히려 피식피식 웃음이 나고, 내내 유쾌하다.

 

'페코로스'란 작가의 지인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작은 양파란 뜻이라고. 그 이름처럼 그의 머리는 반질반질, 동글동글한 대머리다.

그의 대머리는 꽤나 유용하다.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자신을 못 알아 볼 때 대머리를 들이밀면 '유이치 구나' 할 때도 있고, 대머리를 쑥 내밀면 어머니가 재빨리 내리치곤 하니 늙은 어머니의 운동도 되며, 가끔은 어머니가 잘했다고 쓰다듬어주기도 하다가, 또 어느 날은 마치 꾸짖으시는 것처럼 꼬집기도 하신다고.

 

이 만화는 작가가 일하던 지역정보지 귀퉁이에 네 컷 만화로 싣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한다. 후에 작가가 이를 모아 자비로 출간했는데, 이것이 예상치 못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책은 일본만화가 협회 우수상을 수상했고, 이어 작가와 어머니의 모습은 다큐 드라마로 방영되었으며, 이후에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고 한다.

 

 

 

 

유쾌한 시선으로 풀어낸 시간

 

작가는 굉장히 발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치매 환자로 인해 겪게 되는 여러 사건에도 작가 특유의 둥글둥글한 시선과 유머가 섞여 있다. 그 속에서 치매를 겪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어머니가 거쳐온 과거 시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으로 되살아난다.

그에 따라 책 속에서 작가는 주로 어머니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점점 생생하게 가져오고, 자신만의 시간에 빠진다. 그에 따라 독자들도 그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미쓰에'라는 여인이 살아온 삶에 더 집중하게 된다.

 

 

치매, 그리움의 시간을 불러오다

 

어머니 '미쓰에'에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해부터 서서히 치매가 찾아왔다. 만화에서는 꽤나 사뿐한 어조로 그리고 있으나, 어머니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전쟁을 겪고, 아이를 잃었으며,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곁에서 참으로 고된 나날을 보냈다.

 

그런 미쓰에는 치매에 걸려 현재의 기억을 가끔 놓는 대신,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화 속에서는 어머니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어 지나가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어머니가 떠올리는 과거는 더 이상 우울하고 아프지 않다. 어머니는 그 과거의 아픈 기억을 불러 올려, 현재에서 다시금 곱게 쓰다듬고 계시는 듯 하다.

 

 

참으로 힘들게 했던 남편은, 마치 그때의 일을 사죄하듯 이따금씩 찾아와 함께 산책을 나서는 자상한 남편이 되고, 아프게 떠나 보내야 했던 아기는 다시금 어머니의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그리웠던,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러 방문하기도 하고, 여전히 그녀의 기억 속에서 꼬맹이인 아들의 손을 붙잡고 길 위에 서기도 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현재의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놓고는,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를 더욱 환하게 칠하기 시작하셨다.

 

 

엄마, 어머니!

 

책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다. 자신이 가진 대머리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50이 훌쩍 넘은 아들과, 여전히 그 아들이 꼬맹이 같은 어머니. 하지만 이제 아들이 돌봐드려야 할 나이가 되어버린 늙은 어머니. 그 둘이 벌이는 일상의 이야기들은 잔잔하고 맑은 웃음이 되었다. 그러나 그 웃음 끝에는 정확히 무엇인지 모를 눈물이 맺히곤 했다.

 

아, 어머니. 엄마라는 그 말 끝에는 왜 꼭 소금기가 묻어나는 걸까. 나를 낳고, 자신의 젊음을 나의 성장으로 바꾸어낸 사람. 하지만 어렸을 땐 그러한 사실에 대해 인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어느 정도 커서는 내 일에 바빠서 뒷일로 제쳐두고 살고, 그러다가 어머니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할 나이가 되고 보면, 어머니는 훌쩍 노인이 되어 있다. 세상 모든 자식들이 느껴야 하는, 그 돌이킬 수 없는 뒤늦음이 후회스러워 그러는 걸까.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한 권을 앉은 자리에서 가뿐하게 읽어낼 정도로.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속에는 그리움이 쌓였다.

책장을 덮고, 나는 거실로 나가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가 날 보고 웃는다. 그 모습에 마음이 놓여 나도 엄마를 보고 씩 웃는데, 괜히 코끝이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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