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추리, 스릴러 소설

[소설]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스위벨 2014. 2.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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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주인공인 '나'는 초등학교의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는 정교사가 병가를 내거나, 출산 휴가를 갔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동안만 그 반을 맡아 가르치는 일이다.

 

몇 개월 후면 인연이 끝날 아이들이기에 나는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교사로서 가져야 하는 지나친 책임감도 싫다. 그저 잠시 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고, 문제 없이 계약 기간을 마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가는 학교마다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미스터리 작가 지망생인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그 사건 안으로 들어가 해결사 노릇을 하고 만다. 오늘도, 학교에서는 사건이 벌여졌다.

 

비정한 세상, 비정하게 살련다?

 

제목은 비정근(非情勤) 이다. 그런데 한자가 일반적인 쓰임과 조금 다르다. '정근(精勤)' 할 때의 정 자도 아니고, '정규직(正規職)' 할 때의 정 자도 아니다. 마음을 뜻하는 '뜻 정()'자를 쓰고 있다. '비정하다'고 할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비정근(非情勤)의 의미를 풀어보자면, '정 없는 근무'쯤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나'는 교사로서의 열정이나 신념이라곤 없는 선생이다. 오히려 귀찮은 일들을 맡고 싶지 않아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지도 모를 만큼. 그는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이들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말 그대로 3개월 잘 버티다 가는 게 최고일 뿐이다.

 

그러나 마치 그런 그의 생각을 누군가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가는 학교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진다. 누군가의 죽음처럼 심각한 사건일 경우도 있고, 아이들이 벌인 사소한 소동일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진상을 가장 먼저 꿰뚫어 보는 건, 학교 일에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은 계약직 교사다.

 

 

 

 

비정해질 수 없는 비정근 교사

 

그가 사건을 속속 해결하는 데는, 미스터리 작가 지망생이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도,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과한 기대를 할 일도,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편견을 가질 필요도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이 보이고, 사건의 진상도 알아차리기 쉬워 진다.

 

그리고 진상을 알아낸 그는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훈계하기 앞서, 그 아이를 둘러싼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먼저 찾는다. 감정적으로 깊이 관여하려 들지는 않지만, 아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조치를 취할 줄 아는 것이다. 그는 비정근이고, 귀찮은 일은 질색이며, 계약기간 동안 선생이 해야 할 최소한의 업무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동은, 교사라면 기본적으로, 그리고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자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일들이 다 준비되고 나서야 그는 범인에게 자백을 받아내고, 충고를 건넨다. 그러나 보통 선생님들이 해주는 지극히 교훈적이거나, 혹은 선생님의 권위를 앞세워 하는 그런 류의 길고 긴 설교는 아니다. 담담하고 건조한 말투로 건네는, 그저 지극히 현실에 입각한 충고다. 하지만 그 충고는 꽤나 담백하고 멋지다.

 

"저기요, 선생님. 길고양이를 보살펴 주는 게 그렇게 나쁜 짓이에요?"

"물론 나쁜 짓은 아니야. 하지만 보살피는 이상 책임도 져야 해. 자식한테 밥만 먹이고 그 자식이 어떤 식으로 클지는 내 알 바 아니라고 하는 부모님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런 부모들 많아요."

"그래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 거야."

 

◇◆◇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초기 단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펴낸 게 최근일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초기 작품들까지도 새롭게 출판되곤 한다.

 

책 속에는 기간제 교사인 '나'가 풀어내는 6개의 단편과, 초등학생 소년이 주인공인 2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는 모두 초등학교고, 사건의 관계자들도 초등학교 안에 있다. 따라서 사건은 여타의 추리소설에서 벌어지는 그런 흉악하고 긴박한 사건들은 아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장난, 호기심, 치기,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벌어진, 소소하지만 그 나름대로 본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다.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적잖은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가뿐하게 읽고 책장을 산뜻하게 탁 덮을 수 있는, 그런 수수께끼 같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매력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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