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과거 올림픽 대표 스키선수였던 '히다 히로마사'. 그는 별다른 성과 없이 스키 선수를 은퇴하고, 스포츠센터의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못다이룬 스키에 대한 열망은, 현재 스키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딸, '카자미'에게 쏟는 정성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에게 어느 날 '유즈키'라는 이름의 남자가 찾아온다. 현재 스키 유망주로 손꼽히는 카자미와, 과거 올림픽 대표 선수였던 아버지 히다. 이들 부녀의 유전자를 토대로, 스포츠에 유리한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히다는 DNA 채취를 완강히 거부하며 유즈키를 돌려보낸다. 카자미가 이룬 성과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속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사실, 카자미는 히다의 친딸이 아니었던 것이다.
'히다' 조차도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내는 히다가 해외 전지 훈련을 떠났을 때 아기를 출산했다. 때문에 임신 기간과 출산의 순간에도 그는 아내 곁에 머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나던 중, 아내는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감행했고, 그 후 짐을 정리하던 히다는 신문 기사 하나를 발견한다. 자신의 딸 카자미가 태어날 무렵, 어느 병원에서 신생아가 유괴되었다는 기사였다. 무언가 께름칙한 기분을 느낀 히다는 아내가 출산했다는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아내는 출산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카자미는 자신의 딸이 아닌 것이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히다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껏 자신의 딸로 알고, 자신의 딸로 키워온 아이였다.
카자미가 스키선수로 한 발 내딛는 '월드컵'을 앞두고, 카자미의 친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 '가미조'가 히다를 찾아온다.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히다는 카자미가 스키 월드컵을 마치고 나면, 모두에게 진실을 알리겠다고 마음 먹는다. 자신의 딸 '카자미'에게도, 그 딸을 찾으려 하고 있는 친부 '가미조'에게도.
하지만 그때, 카자미의 소속 회사로 협박 편지가 날아든다. 그녀가 절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을 시에는, 카자미가 커다란 해를 입게 될 거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내 협박이 사실이 되듯, 사고가 발생한다. 카자미가 타려고 했던 호텔 버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카자미는 출발 직전 두고 온 휴대전화가 생각나 버스에서 내리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사고를 피했다. 그러나 카자미의 친부로 추정되는 '가미조'가 사고로 인해 중태에 빠지고 말았다.
뻐꾸기, 알을 낳다.
뻐꾸기는 탁란을 하는 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아두고, 다른 새로 하여금 자신의 새끼를 대신 키우게 하는 방법이다. 그 새는 자신의 새끼가 아닌 것도 모르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며 뻐꾸기 새끼를 키우는데, 뻐꾸기 새끼는 태어나자 마자 원래 그 둥지에 있던 다른 알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그래도 어미 새는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왜냐면, 그 뻐꾸기 새끼를 자신이 낳았다고 믿기 때문에. 그 또한 '뻐꾸기'라는 종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 방식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슬프기 그지없다.
이 소설에서는 '카자미'라는 인물의 존재와, 누군가가 타고 난 재능의 '유전자'를 그 뻐꾸기 알에 비유한다. '카자미'는 누군가에 의해, 마치 뻐꾸기 알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떨어지게 된 존재다. 또한 카자미가 가진 뛰어난 운동 '유전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뻐꾸기 알처럼 그녀 내부에 떨어졌다.
카자미는 그녀의 부모로부터 스포츠에 유리한 DNA를 타고 났다. 그러나 만약 그녀의 부모가 키웠다면, 카자미는 애초에 스키를 배울 기회조차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스키를 접하고 여러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던 건, 그녀를 키운 아버지 '히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자미'라는 알을 낳고, 그 안에 뛰어난 스포츠 유전자를 남긴 친 부모, 그리고 그 알을 제 자식으로 알고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키운 '히다'. 과연 뻐꾸기의 알은 누구의 것일까?
뻐꾸기는 그저 뻐꾸기일 뿐.
소설은 DNA라는 소재를 이용한다. 두 사람이 똑같은 정도의 노력을 한다면, 결국은 우수한 운동 유전자를 지닌 선수가 이기게 된다는 게 연구자인 '유즈키'의 입장이다.
그래서 그는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신고'라는 고등학교 남학생을 회사의 스키 선수로 영입했다. 스키는 아예 모르고, 기타를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학생이다. 그러나 워낙 힘든 경제상황에 처한 아버지 때문에 회사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했다. 훈련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모두 '신고'의 타고난 능력을 감탄해 마지 않지만, 신고는 즐겁지 않다. 그가 하고 싶은 건, 기타를 치는 일이니까.
그래서 결국 소설은 이야기한다. 뻐꾸기의 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그 알에서 태어난 뻐꾸기 자신의 것이라고 말이다.
"뻐꾸기라는 새는 말이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군. …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 만의 것이야."
◇◆◇
이야기는 처음부터 히다가 카자미의 친부가 아님을 밝혀두고 간다. 그리고 그 친부로 추정되는 사람까지도. 그래서인지 소설의 긴장감은 확 떨어지고 말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읽으며 이렇게 결말에 대해 별다른 궁금증도 없이, 편안하고 여유만만이었던 적도 참 드물다 싶을 만큼.
소설은 DNA와 스키라는 소재로 재능과 출생에 관한 비밀을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유전자를 받고 자라났고, 또 누구에 의해 길러졌든, 한 사람은 그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며, 존엄한 존재로 남아야 한다고 말이다. 뻐꾸기 알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알 내부에서 숨쉬고 있는 한 마리의 '뻐꾸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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