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장 사이의 망상/문학, 소설, 기타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메리 앤 섀퍼, 애니 베로스

스위벨 2014. 2. 19. 13:00
반응형

[편지 소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메리 앤 섀퍼, 애니 베로스 지음

 

 

1946년, 서른 두 살의 여성 작가 줄리엣은 영국에 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여전히 복구가 되지 않고 남아있는 전쟁의 참상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줄리엣의 것이었던 <찰스 램>의 책이 문학 행사에서 팔려나가고, 그 책은 채널제도 건지 섬에 사는 '도시'라는 남자의 손에 까지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줄리엣은 그로부터 뜻밖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건지 섬에는 서점이 하나도 남질 않았고, 그래서 줄리엣이 찰스 램의 다른 책을 구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느냐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리고 그 편지 속에는 자신이 건지 섬의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회원이며, 그 북클럽은 독일군의 눈을 피해 벌인 '돼지구이 파티' 때문에 생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돼지구이 파티는 무엇인지, 감자껍질파이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궁금해진 줄리엣은 건지 섬의 '도시'와 여러 차례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어 도시의 소개로 건지 섬의 다른 북클럽 회원들과도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줄리엣은 건지 섬 사람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점점 그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다음에 쓸 책의 내용을 고민하던 줄리엣은, 건지 섬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건지 섬으로 직접 가기로 결심한다.

 

 

 

편지, 서간체 소설

 

소설의 내용은 모두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줄리엣과 수 많은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다. 그 대상에는 건지섬의 사람도 있고, 줄리엣의 친구 소피도 있고, 편집자인 시드니도 있고, 시드니의 비서도 있고, 줄리엣에게 구혼하는 미국 사업가도 있다. 그들은 줄리엣과 편지, 혹은 전보 등을 주고 받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내용이 모두 편지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어색하거나, 어렵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오히려 누군가를 위해 쓰여진 편지는, 친근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더 편안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생생하게 살아난 고전 작가들

 

인물들의 대부분은 책을 사랑하고, 그 책으로부터 힘을 얻은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 책에는 많은 영문학 고전 작가들과 그들의 책이 등장한다. 도시가 좋아하는 찰스 램, 이솔라가 좋아하는 브론테 자매, 셰익스 피어, 오스카 와일드, 워즈워스 등등…

 

많은 작가들과 그들의 책이 소설 속에 녹아 들어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되곤 한다. 하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 책에 관한 이야기들은 유쾌한 상황, 재기 넘치는 유머와 함께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다.

 

 

 

전쟁의 참혹함, 그럼에도 존재하는 희망

 

이 책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이다. 그리고 건지섬은 전쟁 중에 독일군 통치 하에서 고통 받았다. 전쟁의 참상과 그로 인해 겪어야 했던 지옥 같은 기억은 책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편지를 통해 회자된다.

 

하지만 소설은 그 끔찍함 속에서도 줄곧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줄리엣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감자껍질파이'라는 북클럽의 이름과 '돼지구이'만 해도 그렇다.

독일군 몰래 돼지 한 마리를 얻게 된 건지 섬 사람들은 비밀리에 모여 돼지구이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통금 시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사람들은 독일군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때, '엘리자베스'는 기지를 발휘해, 자신들이 북클럽의 회원이라고 말하며 독일군이 호감을 가질 만한 독일에 관한 책을 언급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독일군이 확인을 하려 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들은 정말로 책을 읽으며 북클럽 활동을 시작했다. '감자껍질파이'라는 클럽의 이름은, 전쟁 중에 밀가루가 없어 감자껍질로 파이를 만들어 북클럽 모임의 간식으로 내놓은 것에서 유래했다.

 

북클럽과 그들이 읽은 책은 전쟁의 실의에 빠진 이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이 되고, 그로 인해 북클럽은 고통 중에도 존재하는 웃음과 희망의 상징이 된다.

 

 

◇◆◇

 

내내 유쾌해서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지만, 그 밖에도 정말 볼 거리, 얻을 거리가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혼자 피식피식 웃다가, 엘리자베스의 죽음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고전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땐 새롭게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전쟁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줄리엣과 도시의 로맨스에는 설레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인 줄리엣처럼 나도 건지 섬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과묵한 성격의 농부 도시, 엉뚱발랄 이솔라, 당차고 씩씩한 엘리자베스, 귀여운 꼬마 킷…  그리고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무려 1946년의 영국 건지섬을 지금의 내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놓아 준다. 지금이라도 영국 건지 섬에 가면, 그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 것 같은 기분이 들만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