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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막다른 골목의 추억 – 요시모토 바나나

스위벨 2014. 2. 1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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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막다른 골목의 추억 – 상처를 감싸 안는 따사로운 시선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 소설집이다. 책 속에는 단편소설 5편이 담겨 있다. 그 단편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유령의 집 / 엄마! / 따뜻하지 않아 /

도모 짱의 행복/ 막다른 골목의 추억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었거나, 무언가로부터 상처받았거나, 어떤 부분이 결핍된 상태에 놓여 있다.

 

[유령의 집]의 주인공들은 아주 묘하고도 유쾌하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를 기대하거나 약속할 수 없다. 그들은 곧 이별해야 할 상황을 앞두고 있다.

 

[엄마!]의 주인공은 어느 날 회사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난 후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회사에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식당의 음식에 다량의 감기약을 넣은 테러였다. 그 후 그녀는 나른한 몸의 상태와 함께, 과거의 아픔들이 갑자기 휘몰아쳐 오는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는, 혼란스러워한다.

 

[따뜻하지 않아!]에서는 어렸을 적 친구와 자신이 바라보았던 '집'이란 공간과 그 '불빛'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재 그 친구는 없다. 어렸을 적 그녀가 아주 소중히 여겼던 친구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어른들의 일 때문에 안타깝게 희생되어야 했다.

 

[도모 짱의 행복]에는 어렸을 때 아빠의 외도를 바라보고, 결국 아빠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겨야 했던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자라서 한 남자를 흠모하게 되지만, 그에게는 이미 멋진 연인이 있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약혼자로부터 버림받은 한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느 날 믿었던 사랑으로부터 상당히 우유부단하고, 예의없으며, 아주 책임감 없는 방식으로 이별을 당했다.  그 후 그녀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 삼촌이 운영하는 철거 직전의 가게, '막다른 골목'에서 지내며 시간을 보낸다.

 

 

 

 

모두들 아픔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아픔들은 상당히 심각할 수 있을 정도의 문제다. 또한 현재 지금 그들이 안고 있는 슬픔 말고도, 과거의 상처도 존재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느 정도 봉합되었다고 생각했던 상처들은, 새로 생겨난 상처의 아픔과 함께 다시금 떠오르고 만다. 그들은 그렇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듯한 상황에 놓여 있다.

 

충분히 우울하고 절망적일 수 있는 상황들이다. 생을 포기할 만큼 치명적인 상처일 수도 있는 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책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고, 사뿐하다. 짧은 길이의 단편 소설 속에 탄탄하게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들은, 그 아픈 상처를 따라 어두움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대신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다른 좋은 것들을 살짝 비추어 준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다. 책의 제목이 '막다른 골목의 추억'인 것처럼, 나를 막아선 그 장애물 앞에서도 삶은 무언가 다른 것들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 그 또한 서서히 추억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없다는 결핍상태와, 무차별 테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주인공, 그러나 그는 약혼자의 친절함으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으로부터, 스스로 감정을 녹여낸다. 그리고 믿었던 사랑으로부터 어처구니 없는 버림을 받았어도, 자신과 별 상관 없을 수도 있는 한 인물이 보여준 친절로 인해, 아픔의 상징이었던 물건조차 새로운 추억을 덧입을 수 있다.

 

 

삶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게 되기도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런 길에서 서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 절망의 상황을 책은 아주 담백하고 가뿐한 어조로 그린다. 굳이 심각하게 감정을 휘몰아치게 만들어, 그 폭풍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는 말라는 듯한 말투다.

 

그리고 잠시 눈을 돌려, 그 막다른 골목에 있는 것들을 찬찬히 보라고 이야기한다. 막다른 골목, 그 길의 끝에도 사람들이 있고, 허름하지만 당신이 잠시 몸을 웅크릴 어떤 장소가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이 있고, 그리고 아주 미미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다른 '좋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다시금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을 이어가 보라고… 그리하면 막다른 골목도 언젠가 새로운 색으로 덧칠되어 '추억'으로 남겨질지도 모를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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