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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스위벨 2014. 1. 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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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무라카미 하루키

 

 

서른 여섯, 다자키 쓰쿠루는 자신이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그가 가진 그런 생각의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마음이 딱 맞는 친구 4명과 함께 5명이서 완벽한 그룹을 형성했었다. 한치의 틈도 없이, 각각이 꼭지점이 되어, 완벽한 5각형이 만들어져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 친구들 4명의 이름에는 모두 색깔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그의 이름에 들어있는 색깔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아카(빨강), 아오(파랑), 시로(하양), 구로(검정). 다만 색채가 없는 쓰쿠루만이, 그저 '쓰쿠루'였다. 다자키는 자기 이름에 색채가 없는 걸, 참으로 안타깝게 여겼다.

 

친구들과 그는 고등학교 내내 그 완벽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 관계는 쓰쿠루가 도쿄로 대학을 오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쓰쿠루는 주말에 고향 나고야에 내려가 그들 4명과 합류하는 것이 삶의 중요한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갑자기 4명으로부터 거부를 당한다. 그 절교의 이유도 알 수 없이 그저, '네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말이 전부였다. 쓰쿠루는 영영 이유도 알 수 없는 채, 완벽하다 여겼던 자신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내쳐졌다. 이후 쓰쿠루는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공허해져 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다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해 역을 만들고 수리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서른 여섯 살이 된 쓰쿠루는 자기 어딘가가 텅 빈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여자들을 만나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고, 친구도 사귀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는 호감을 품게 된 한 여자 '사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때의 아픔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이제 슬슬 넘어설 때도 돼지 않았을까? 자신이 네 친구들에게 왜 그렇게나 심하게 거부당했는지, 당해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자기 손으로 밝혀도 좋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자기는 어떤 문제를 마음에 끌어안고 있어. 그건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뿌리가 깊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아마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그 무거운 짐을 끌어안은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야 해."

 

그래서 쓰쿠루는 옛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기 시작한다. 과거의 진실을 듣기 위해서. 그렇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가 시작되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그는 자신을 색채가 없다고 생각한다. 색깔이 없다… 책에서는 시로의 '하얀색'마저 색채라고 언급하고 있으니, 그에게 색채가 없다는 건 무(無)의 의미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쓰쿠루는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느낀다.

 

"아마도 나한테는 나라는 게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개성도 없고 선명한 색채도 없어. 내가 내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그게 오래 전부터 내가 품어 온 문제였어. 난 언제나 나 자신을 텅 빈 그릇같이 느껴왔어. 뭔가를 넣을 용기로서는 어느 정도 꼴을 갖추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내용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거든."

 

하지만 무려 16년이 지난 친구들은 말한다. 그렇기에 자신들은 과거 쓰쿠루를 내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쓰쿠루에게 색채가 없다는 건 곧, '쓰쿠루'라는 색으로 밖에 표현되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 어떤 것으로도 대변되지 않는 '쓰쿠루'. 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래고, 빛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보이는 정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쓰쿠루는 그렇지 않다. 쓰쿠루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어떤 색채로도 대변되지 않고, 그저 늘 '쓰쿠루'였다. 늘 자신의 페이스를 지니고 있었고, 친구들이 나고야를 선택했을 때도, 그만은 도쿄를 선택해 나왔다. 그리고 꾸역꾸역 자신의 삶을 살아나와, 결국 그리 원하던, 역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자신은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빈 공간은 무엇이든 받아 들일 수 있는, 강인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둡고 망연자실한 밤바다를 혼자 헤엄쳐 나올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 작품, '상실의 시대'와 관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고 느꼈다. 자신의 전부였던 사랑의 상실과, 완벽한 세계에서의 추방.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랑, 미도리와 사라. 이야기와 함께하는 음악, '노르웨이의 숲'과 '순례의 해'. 그리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던 와타나베와,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난 쓰쿠루.

 

과거의 아픔과 상실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추방당한 쓰쿠루뿐만 아니라, 추방해야 했던 다른 4명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쓰쿠루가 마치 기차역을 짓고, 다시 고치듯이, 하나하나 잘못된 점을 고쳐가면 되는 것이다. 잘못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역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 한다. 그래야 누군가가 오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이어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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