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현실과 상상 사이, 그 어딘가
벤 스틸러 감독 / 벤 스틸러, 크리스틴 위그, 숀 펜 출연
잡지사에서 일하는 월터 미티, 그는 사진 현상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지극히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에게 비밀스러운 삶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상상'이다.
사무실에서나 길을 걷다가, 혹은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그는 갑자기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한다. 상상 속에서는 남극을 탐험하기도 하고, 슈퍼 히어로처럼 하늘과 거리를 날아다니며 싸움을 하기도 하고, 가스 폭발하는 건물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개를 구출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멍한 상태'로만 비춰진다. 그래서 약간은 멍청해 보이는 인상을 남기고, 때론 다른 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상상은 오직 월터만의 것이며, 겉으로 보여지는 실제 삶 속의 그는 고루하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한 남자였으므로.
그러다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인수되고, 회사는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이 발행하는 잡지 [Life]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된다. 그리고 그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건, 유명 사진작가 '션 오코넬'의 25번째 필름이다. 션은 월터와 회사에 현상용 필름을 보내면서 이렇게 전한다. "25번째 필름에는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 회사 간부들은 어서 그 사진을 보자며 재촉하는데, 사진 현상 담당자인 월터는 그 25번째 필름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자기들의 실수인지, 혹은 션이 보내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중에, 월터는 그 필름을 찾기 위해, 연락이 닿지 않는 션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션은 이곳저곳의 오지를 누비는 사진작가다. 때문에 월터는 그의 행적을 따라, 마치 상상 같은 모험을 떠나게 된다.
(주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험가가 찾은 삶의 정수
사진작가 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빈다. 그는 월터가 매일 머릿속으로만 그리는 모험적인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 자신을 위해 사진 찍기를 잠시 내려놓고, 그 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의 주체는 오롯이 자신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보내온 25번째 필름에는 그런 그가 생각하는 '삶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25번째 사진을 기대한다. 안하무인 회사 간부인 '턱수염'마저, 그 사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세상의 곳곳을 엿본 모험가다. 위험한 곳을 주저하지 않고 찾아가며, 누구는 평생 한번 가져볼까 말까인 모험의 순간들이 곧 삶인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발견한 삶의 정수라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여곡절의 여정 끝에 찾은 필름, 그리고 잡지의 마지막 표지에 실린 션의 25번째 사진은, 회사 앞 분수대에 앉아 사진 필름을 들여다보고 있는 '월터'의 모습이었다. 아주 고루하고, 약간은 보잘것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Life, 삶
그들이 만드는 잡지의 이름은 "life"이다. 그 잡지의 표지에는 온갖 주요한 인물들의 얼굴이 실린다. 영웅이기도, 유명인이기도, 그리고 평범한 이들은 결코 시도하지 못한 모험을 하고 온 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은 화려하고, 다른 이들의 경탄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제일 눈에 잘 띄는, 잡지의 표지가 된다.
그리고 월터는 그 표지 사진을 현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월터는 그저 깜깜한 작업실에서, 이러한 이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만드는,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남자다. '사진 현상'이란 작업은 결코 앞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마치 월터 자신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필름 사진을 현상하는 일은, 이미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든 고루한 직업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월터의 삶을 지루하다 했다. 이력에 넣을 뭔가 특별한 경험이 없느냐고 그를 재촉해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잡지의 마지막 표지는, 바로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건 월터가 모험을 하지 않던 바로 그때의, 평범하고 참으로 '별일 없는' 삶의 모습을 찍어내고 있었다. 갖가지 모험을 살고 있는 사진작가 션이 돌아온 곳은 바로 그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었으며, 그에게 감동을 준 그 한 컷은 그가 자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기대하는 '삶'의 마지막 얼굴은, 바로 우리의 익숙하기 그지없는 그 삶이었다.
모험이 끝나고 난 뒤
월터는 모험을 끝내고 돌아왔다. 하지만 별다를 건 없다. 그는 결국 실업자가 되었고, 사진 현상가에 불과하다. 평생 해온 일이지만, 이제는 사향 길로 접어선 직업이기도 하다.
모험은 무언가 삶에 큰 변화나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그는 여전히 좀 소심하고,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처지다. 하지만 모험을 끝나고 온 월터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재수 없는 '턱수염'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해줄 정도의 용기를 가졌다. 예전 같으면 상상 속에서나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리고 셰릴에게 먼저 달려가 말을 건넬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변화가, 아마도 월터의 삶을 크게 바꿀 것이다. 모험은 그래서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별로 눈에 띄지도 않을 아주 미미한 것들이 불러올, 큰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험을 꿈꾸지만 결국 일상을 살아야 한다. 월터처럼 거창한 상상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머릿속에 바람을 가지고 산다. 영화는 얼핏 그런 일상에 갇힌 사람들이게 모험을 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영화를 보기 전 접하게 되는 숱한 광고와 포스터를 보고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매일매일에 충실한 당신의 지금 삶도 충분히 멋지다 말하고 있다. 모험이란 그렇게 뚝 떨어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내 삶 곳곳에 있는 노력의 순간들인 거라고. 그러므로 화려하지 않은, 그러나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삶은 충분히 멋지다며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늘 머릿속으로만 꿈꾸는 상상이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봐도 좋다고 응원하기도 한다. 그 시도가 우리의 상상과 현실의 큰 간극 사이에 놓인, 작은 연결 다리가 되어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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