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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 요시모토 바나나

스위벨 2013. 12. 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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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 요시모토 바나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해 야반도주를 하는 날, 엄마는 비싼 물건 위주로 짐을 싸려는 딸 테트라에게 말한다.

 

"아니지, 테트라.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부터 챙기는 거야"

 

그녀의 엄마는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고, 엄마의 영향을 받은 테트라도 그렇게 성장한다.

 

다마히코는 그런 테트라에게 '소중한'으로 표현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만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 대해 이해했고, 서로를 받아들였으며,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 뒤, 다마히코가 부모님을 따라 하와이로 가면서, 그들은 이별을 한다. 만만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테트라가 붙잡고 살기에, 하와이는 너무 멀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 끈을 놓지 않았다. 야반도주 하던 날 밤, 테트라가 다마히코에게 남긴 편지는 먼 훗날 노래가 되어 테트라에게 왔다. 그리고 그 노래는 두 사람을 아름다운 하와이의 남쪽 자락으로 데려다 놓는다.

 

 

 

 처음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람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편지는 노래가 되어 찾아왔습니다.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개인적으로 사랑 애() 자를 쓰는 '애인'이란 단어보다는, 그리워할 연() 자를 쓰는 '연인'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불타오르고, 열정적인 그 느낌의 사랑보다는 누군가를 잔잔하게 그리는 그 느낌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우스포인트는 하와이의 가장 남쪽 끝을 말한다. '남쪽'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그렇다. 따뜻하고, 밝고, 눈부시다. 달콤하고, 풍요롭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라면, 누군가를 그저 '그 사람 자체'로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세상의 온갖 복잡하고 지리한 일들에서 벗어나, 사랑만으로 충만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사랑을 위해 사우스포인트로 가야 했던 게 아닐까. 그런 곳에서 맞닥뜨린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믿어보고 싶기도 하니까.

 

그러나 책의 제목인 <사우스 포인트의 연인>은 단지 주인공인 테트라와 다마히코 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마히코의 부모님도 하와이의 섬에서 사랑을 이룬 사우스 포인트의 연인이었고, 다마히코의 동생과 그의 애인도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이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도, 시간이 지나서도 늘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리하여 결국은 하와이의 '사우스포인트'에서, 운명적 사랑을 마주하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에서는 보통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클라이막스가 아니라, 인물이 느끼는 감각과 감정과 생각이다. 때문에 그의 책에서는 한 인물이 가지는 내면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서술이 곧잘 길게 이어진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 '테트라'의 생각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나타난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하와이에까지 줄곧 이어지면서 말이다.

 

급격한 이야기의 흐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 하지도 않는다. 가장 임팩트 있을만한 사건조차 펑! 하고 터트리지 않는다. 살짝, 꺼내보인다. 그러므로 책은 대체로 담담하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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