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잡동사니 – 에쿠니 가오리
마흔 다섯 살 여성 슈코와 열 다섯 살 소녀 미우미. 이 둘이 번갈아 가며 책의 화자로 등장한다. 둘은 우연히 푸켓의 한 여행지에서 만난 사이다. 슈코는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고, 미우미는 아빠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슈코는 호텔에서 본 미우미를 첫눈에 마음에 들어 해서, 그녀를 여행 내내 관찰한다. 호텔 식당에서나 수영장에서 줄곧 그녀의 행동을 눈으로 좇는다. 그리고 미우미도 슈코에 대해 어느 정도 호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빠에 대한 정보를 슬쩍 흘려주기도 한다. 슈코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아빠가 슈코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슈코는 너무나 사랑해 자기의 존재조차 잃게 만드는 남편 '하라'가 있는 유부녀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미우미의 아빠와도 성적 관계를 맺는다. 거기에는 거리낌도, 죄책감도 동반되지 않는다. 그건, 남편의 자유분방한 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라는 엄연히 슈코라는 부인이 있지만, 그는 다른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뿐만아니라, 그에 대해 부인에게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마음 아파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미우미와 슈코는 여행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쭉 여행지에서의 인연을 이어간다. 슈코의 어머니인 기리코의 집을 미우미가 방문하고, 기리코의 생일 날, 미우미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미우미와 하라, 그리고 슈코의 그 관계가 심상치 않다. 미우미는 슈코의 남편인 하라씨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그 앞에서 소녀가 아니라 여자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슈코에 대해 적대심이나 악의를 품지는 않는다.
잡동사니. 미우미는 슈코와 기리코(슈코의 어머니), 하라와 만나면서 그들이 자신을 학생도, 누구의 딸도 아닌 그저 '존재 자체'로 대해준다는 것을 느낀다. 마치 그 자리에 오래도록, 본질 자체로 존재하는 잡동사니처럼.
한 사람을 아무런 외적 요인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인간 대 인간으로 감정을 나눌 수 있다. 미우미가 마흔 다섯의 슈코와 그리고 노인인 기리코, 중년 남성 하라와 거리낌 없이 인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슈코와 하라가 자유분방한,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연애를 즐기는 것도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잔잔하게 흐르던 인물들의 감정은, 어느 순간 위태해지고, 발끝이 쭈뼛 서게 만든다. 마치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던 감정들은, 갑작스럽게 폭포를 마주한다. 하지만 책 속 그녀들은 전혀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는 오히려 편안하게 보인다.
작가는 그러한 상황에 따른 두 여성의 심경 변화, 각자가 느끼는 감정의 물결을 섬세하게 그리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연령대가 지극히 다른 두 명의 화자를 번갈아 내세우며, 그녀들을 통한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그만큼 인물의 속을 잘 들여다 보기 위해서였다.
'에쿠니 가오리'가 그간 기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녀가 그리는 연애는 다소 통념에 어긋나고 위험하지만, 본인들만큼은 편안하다. 그러나 이 부도덕적이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며, 지나치게 경계가 없는 연애를 '사랑'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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