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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트렁크 - 서른 살, 다섯 개의 결혼반지 / 김려령 지음

스위벨 2015. 7. 26.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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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도서] 트렁크

/ 김려령 지음



서른 살,

다섯 개의 결혼반지

 

 

    줄거리, 내용    

 

스물아홉 살의 인지. 그녀는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비밀 자회사인 NM(NEW MARRIAGE)에서 일하고 있다. NM은 아주 비밀스러운 회사로, 거액을 납부한 VIP회원들에게 '기간제 배우자'를 보내주는 일을 한다.

  

기간제 배우자가 되는 건 NM의 직원으로, 인지도 이 회사에서 기간제 부인인 FW(FIELD WIFE)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 입사해 벌써 네 번의 기간제 결혼생활을 마친 인지는, 직전의 남편에게 재결합 신청을 받고 그와 함께 다섯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 인지 앞에 '엄태성'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인지는 친구인 '시정'의 소개로 휴가 기간 중 그와 한번 만남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엄태성은 자신을 매몰차게 퇴짜 놓은 인지에게 집요하게 접근해 온다. 그리고 인지 주변을 맴돌던 엄태성은 급기야 인지와 다섯 번째 결혼을 시작한 남편의 집으로까지 찾아오기에 이른다.

 

◇◆◇

  

소설 '트렁크'는, 책《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유명한 김려령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톡톡 튀는 화법과 문체, 속도감 있는 전개, 하지만 유쾌한 가운데서도 진지한 질문을 담는 김려령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이 책에서도 잘 살아 있다.


  


소설은 '기간제 배우자'란 독특한 소재를 가져왔다. 회사에서 여타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과 같이 조건에 맞추어 '공급'하는 배우자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배우자'는 회사에서 심혈을 다해 뽑아 교육을 마친 직원들이다. 그들은 계약 기간 동안 진짜 '배우자'가 하는 모든 일을 고객에게 서비스 한다.

 

"우리는 애인과 아내 사이에서 그들 생의 한 구간을 함께한다. 시작부터 후회였고 종국에도 후회가 될 것을 알지만,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체념이라고 하기에는 내가 가엽고,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비겁하다."

  

 


사랑, 하시겠습니까?

 

이 소설에서는 참 여러 가지 사랑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은연중 당연하다 여기는 그런 사랑의 모습은 아니다.

우선 기간제 배우자로 일하는 인지와, 법적인 제도 안의 결혼 대신 돈을 지불하고 배우자 서비스를 택한 고객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양성애자였던 인지의 첫사랑, 동성애자인 인지의 친구도 있다.

 

처음 인지에게 트렁크를 싸게 한 것은 엄마였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의 사랑이 양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녀에게서 떼어 놓았다. 엄마는 '사랑'이라 했지만 인지에게는 '폭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태성이다. 그는 '호의'라 하고 '관심'이라 하지만, 인지에게는 '두려움'이고 '강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인지'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엄청난 위험을 가져왔음에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은 질문을 띄운다. '사랑'이라는 것의 뒤틀린 모습에 관하여, 사랑과 결혼에 관한 우리의 관습적 인식은 타당한 걸까 하고.

  


 

트렁크를 싸는 삶

 

누군가와의 계약이 성립하면 인지는 트렁크를 들고 그 남자의 집에 간다. '출장'이라 불리는 결혼생활을 위해서. 그리고 일정 기간 동안 배우자로 살다가, 계약이 종료되면 다시 트렁크에 짐을 싸 떠나온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다른 출장 결혼을 시작한다.

 

내 삶을 모두 구겨 넣어 힘들게 끌고 다녀야 하는 트렁크. 트렁크를 들고 가서 잠시 머무르는 곳은 집처럼 편하지 않다. 그 이유는, 곧 다시 짐을 싸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렁크를 가지고 잠시 머무르는 곳은, 아무리 편해도 집과는 같을 수 없다. 얼마 후 다시 짐을 싸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주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렁크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책의 마지막, 삼십의 생일을 맞은 인지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출장 결혼 내내 가지고 다닌 트렁크를 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엄태성의 집요한 관심이라는 '폭력'이 다시금 인지를 급습한다. 그 순간 인지는 본능처럼 트렁크를 잡는다. 그렇게 인지는 결국 트렁크를 버리지 못했다. 그것도 내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서.

 

결국 삶이란 게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이제 짐을 좀 풀고 자리잡아 볼까 하면,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거칠고 끈덕지게 따라붙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어떤 것. 그래서 결국은 또 다시 본능적으로 트렁크 손잡이를 잡아야만 하는, 그렇게 내 자신을 평생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게 바로 삶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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