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저 앤 로사 (Ginger & Rosa)
/ 샐리 포터 감독
/ 엘르 패닝, 앨리스 잉글러트, 아네트 베닝 출연
줄거리
1945년, 런던의 한 병원에서 나란히 누운 두 여인은 딸을 낳는다. 그리고 1962년, 그 아이들은 둘도 없는 단짝의 십대 소녀로 성장한다.
진저와 로사는 옷과 머리 스타일은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며 함께 나누고, 위험한 일탈조차 함께 한다. 둘은 언제까지든 변치 않는 우정을 가지자는 다짐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함께 보낸다.
그러나 점점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가는 두 소녀는, 조금씩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다른 생각 속에서도 두 소녀는 서로의 친구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로사는 자꾸만 진저의 아버지 곁으로 가깝게 다가오고, 진저의 아버지 롤랜드가 로사를 보는 눈빛 또한 위험하다. 롤랜드와 로사 사이에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진저 앤 로사
1962년은 시기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때였다.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냉전이 계속되며 국제 정세가 악화일로를 걷던 시기였다. 그런 때에 사춘기를 맞게 된 진저와 로사가 있다.
진저는 그 사회적 불안감을 지켜보면서 상당히 동요한다.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해, 자신들은 무언가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련 모임에 나가고, 폭탄 반대 집회에도 참석한다.
하지만 로사는 생각이 다르다.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신에게 의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진저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남자아이들과 벌이는 일탈이나,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이 비행을 행하던 두 소녀는 점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점점 삐걱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녀가 마주한 현실과 이상의 충돌
영화 속 진저의 아빠와 엄마는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이다. 엄마는 현실이 중요하고, 일상 속에서의 자잘한 일들을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아빠 롤랜드는, 이를 테면 이상주의자다. 그녀의 아버지는 폭력에 항거하며 군입대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다. 그리고 시민운동가와 같은 활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활동은 행동이 아니라, 말과 이론에 가깝다.
그런 부모님 사이에서 진저는 아빠 편이다. 늘 지질한 현실에 쌓여 우울해 하며, 시시한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싫다. 진저는 그런 이상적인 신념과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아버지가 좋았고, 동경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했을 때, 진저는 결국 엄마를 떠나 아빠의 곁으로 간다.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진저는 차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신념과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개인의 자유를 무기 삼아 딸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아버지는 옳은가, 평화를 내세우며 행동하여 불의와 싸우려 하지 않는 아버지는 옳은가.
(주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세상의 종말
영화는 염세적이고 음울한 시대의 모습에,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모습을 겹쳐 놓았다. 진저와 로사는 상당히 위태로워 보인다. 그리고 진저가 폭탄 반대운동에 그리 열을 올리는 건, 단지 그 표면적인 문제만은 아닌 듯한 생각이 든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불안과 우울과 두려움이, 마치 모두 다 폭탄 때문이라고 여기고 싶어하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당장 끝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세계는, 그녀의 가정, 그녀의 부모님, 그리고 그녀 자신의 세상이다. 그래서 진저는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진저는 자신이 입을 여는 것이 폭탄처럼 느껴졌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문다.
아버지가 틀렸음을 이야기하려면, 그 아버지를 믿고 따랐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말해야 했다. 그건 이제껏 쌓아 올린 자기 세계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로사와 아버지의 사이를 알게 되면, 그것은 종말이라 여겼다. 자신이 입을 열면 폭탄이 터지고, 그러면 자신의 가장 직접적인 세계, 그녀의 가정은 산산조각이 날 테니까.
그러나 진저는 결국 그 폭탄을 터트리기에 이른다. 그때의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얼굴이다. 그 동안 어른인 척 하며 애써 참아왔던 아이 같은 두려움을 전부 쏟아낸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진저는 로사와 자신의 다름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순간 내내 불안하고 마음 졸였던 소녀는 사라지고, 어느새 어른이 된 진저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
다소 지루할 것을 예상하고 들어갔는데, 얼마 되지 않아 금새 영화 속에 몰입해서 봤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요, 시대적 분위기와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음악과 영화 속 배경 장소들도 무척이나 좋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을 맡은 엘르 패닝은, 이제 배우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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